기득권 정치세력 차별·혐오 양산 맞서
반성·쇄신 향한 소신 행보 존재감 부각

몇 달 새 대선과 지방 선거라는 굵직한 선거를 두 번이나 치렀다. 민주당은 두 번의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민주당만 모르고 다 아는 패배 이유를 굳이 나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여 나는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올해 1월 이재명 대선 후보 선대위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20~30대 여성 표를 겨냥한, 선거 시기 흔하디흔한 인재 영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정치권에서는 생소한 인물이었지만 20~30대 여성들에게는 n번방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로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선 패배 이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파격적이라기보다 의아함이 앞섰다. n번방을 폭로하면서 우리 사회 디지털 성범죄를 공론화한 인물이기는 하나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20대 여성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의심스러웠다. 혁신을 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로 비치기보다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단기 처방, 무책임함으로 인식되었다. 정치권이 이런 식으로 20대 청년 여성을 소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우려와 안타까움은 기우만은 아니었다.

그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으나 그에 따른 역할과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남성 중심의 기존 정치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갓 정치권에 입문한 그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의 발언은 매일같이 화제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그가 하는 말마다 당의 핵심 정치인들은 합의되지도, 정제되지도 않은 말이라 치부했다.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해 의욕만 앞서 일을 그르치는, 그저 어린 여성 정치인으로 비치게 만들었다. 결국, 박 위원장은 지방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임명된 지 3개월 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정치권은 여전히 견고한 가부장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청년 여성 정치인의 현실은 참혹했다. 그러나 그 참혹함의 한편에서 청년 여성 정치의 가능성 또한 발견하게 됐다. 한국 정당 정치에서 20대 여성이 당대표급 위치에 오른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에 합당한 역할과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상징성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가 얼굴마담으로 머물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자녀 입시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장관과 정경심 전 교수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소위 '검수완박'에 대해 국민의 관심사가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 의혹이 터져 나오자 곧바로 제명을 결정했고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논란에 대해서도 징계 의사를 명확히 했다.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을 폭력적 팬덤이라 비판했다.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어느새 '불꽃 대장'에서 '내부 총질러'로 바뀌었고 수많은 비판과 욕설을 감당해야 했지만 6개월 만에 그는 정치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한 정치인이 되었다.

그는 비대위원장으로 3개월도 채우지 못했지만 적어도 선거 한철 이용되고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눈치보지 않고 비판했고 차별과 혐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그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은 청년 여성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명성이 그저 개인의 명성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20대 청년 여성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내고 확장해 나가는 기반이 되기를 바라며 그의 이후 행보를 기대해본다.

/김혜정 젠더N정책연구소 대표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