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테라 사태 터지자 잇단 비난 기사
언론·지식인 그럴듯한 사후 평론 비겁

나는 지난해 6월 경남도민일보에 '한탕주의 혹은 더 멍청한 바보를 찾아서'라는 칼럼을 썼었다. 가상화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화폐의 '가치'는 모두가 동의하는 '믿음'이거나 국가의 '보증' 혹은 금이나 은 같은 가치있는 금속의 '담보'에 기초하고 있다. 가상화폐시장에서 최근 자주 쓰이는 용어인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은 가상화폐를 기존 화폐 또는 실물자산과 연동해 가격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안정적'인 코인이 실제로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최근의 루나와 테라 사태는 보여준다. 루나와 테라는 한국인 권도형 대표가 싱가포르에 설립한 테라폼랩스라는 회사를 통해 발행한 코인이다. 테라는 다른 스테이블 코인처럼 법정화폐를 준비금으로 두지 않는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다. 루나와 테라라는 2개의 코인을 발행해 루나 가격이 떨어지면 테라로 바꾸어주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 같은 교환을 통해서 가격 하락을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가상화폐를 가상화폐로 '보증'한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하려면 새로운 돈이 계속 유입되어 회사가 잘 돌아가고 문제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테라폼랩스는 앵커 프로토콜이라는 저축·대출 플랫폼에 돈을 맡기면 연 20%의 높은 이율을 준다고 투자자를 모집했다.

현재 한국 시중은행들의 평균 이자율은 1년에서 2년 미만 예금의 경우 1.5%이다. 그보다 7배가량 높은 이자를 준다는 것이다. 신흥종교처럼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1997년 종합금융 사태나 다단계금융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 아닌가? 시가총액이 50조 원을 넘어 한국 시총기업 10위권 내인 네이버를 추월할 정도였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신앙'이 흔들리면서 하루 아침에 코인 가치는 0원에 수렴하게 됐고 피해자들의 피해액만도 50조 원에 육박한다. 시장에서도 퇴출 직전이다.

하지만 투자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어 가상화폐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도 해당 코인 발행 기업에 대한 조사도 어렵다. 처음부터 다단계사기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어떤 언론도 지적하지 않았다. 한국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권도형 대표를 테슬라 창업자에 비견하는 한국의 '일론 머스크'로 추어올리기 바빴다. 구글링을 통해 '권도형혁신'으로 검색하면 30만 건 가까운 기사가 뜰 정도이다. 한국 내에서 디지털코인의 발행(ICO)을 금지하면서 ICO를 허용하는 싱가포르 등으로 국부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비난성 기사도 줄을 이었다.

사태가 터지고 난 뒤 한국 최고의 권위를 주장하는 한 중앙일간지의 칼럼 제목은 이렇다. "5년 된 회사에 50조가 몰린 광풍, 코인런은 예고되어 있었다".

미네르바(Minerva)는 그리스 신화의 아테네에 해당되는 로마 신화 속 지혜의 여신이다. 미네르바 여신의 상징은 부엉이였다. 그래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찾아와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말한 이는 헤겔이었다. 낮이 다 지나고 저녁이 되어서야 날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에 대한 인간의 앎은 문제가 마무리되는 즈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나는 이 경구를 다르게 해석한다. 사태가 터진 다음 그럴듯하게 사후 평론을 하는 것은 한국 언론과 지식인의 비겁에 대한 풍자라고 생각한다. 맹금이 없는 밤이면 부엉이는 '견제받지 않는' 밤의 제왕이 아닌가?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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