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우리네 삶 고스란히

시집을 받아들고 첫눈에 들어온 제목에서 '붉덩물'이 뭐지?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시집을 펼쳐 관련한 시가 있는지부터 살펴본다. 84쪽에 그 시가 있다.

"달동네 골목길도 쓸고 내려왔겠지/ 집집이 터지는 한숨 소리도 쓸었겠지/ 좁은 봇도랑도 헤치고 나왔겠지/ 농사꾼 시름도 보듬고 나왔겠지/ 냇둑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피멍 든 가슴도 씻겨 흐르겠지/ 흘러 강에 닿아 더 크게 울겠지/ 그 울음 붉고 뻑뻑하겠지."

아하, 시인이 붉고 뻑뻑한 울음을 씻겨낸 냇물을 두고 지어낸 조어구나. 많은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모이고 모여서 붉고 뻑뻑한 울음이 된다는 시적 형상화가 탁월하다.

<붉덩물을 본다>는 안웅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그의 첫 시집은 <그늘 속의 그늘>로 2020년 1월에 나왔다. 의령 출신의 안 시인은 1993년 계간 <시세계> 여름호를 통해 등단했다. 부산과 마산 문인협회 회원으로 있다.

안 시인은 표제시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에 감정이입하며 그러한 마음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아파트 상가 건물 앞에/ 저녁 7시쯤이면/ 낡은 리어카 한 대 꼭 온다/ 찌그러진 짐칸에 온갖 고물 싣고/ 이빨 갈 듯 빠드득 베어링 굴리며/ 70줄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네/ 휙휙 잡동사니 주워 던져올리며/ 휙휙 저녁을 주워 던져올리며/ 온통 어둠만 부려 놓고 간다."('리어카 한 대' 전문)

리어카를 끄는 70대 노인만 보고 어둠을 감지하는 건 아니다. 안 시인은 5월의 장미, 그 화려하게 활짝 핀 장미를 보고서도 시대의 슬픔에 눈물짓는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붉게 폈습니다/ 그해 5월 광주에도 장미꽃 폈고/ 벽이면 벽마다 길바닥마다/ 온통 붉게 얼룩졌다지요/ 못다 핀 봉오리에서 시드는 꽃송이까지/ 향기 품은 채 쓰러져 얼룩졌다지요"('장미' 일부)

안 시인이 생각하는 '삶'은 어떨까. 그는 외줄에 몸뚱이를 매달고 사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 밧줄이 밥줄이라고.

"한 사내/ 한 묶음 밧줄 둘러메고/ 페인트통 하나 들고/ 옥상으로 갔다/ 밧줄 한 가닥 드리우고/ 줄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내/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칠한다/ 땅을 밟고 담배 피워 무는 사내/ 두렵지 않냐니까 이게 삶이란다/ 외줄에 몸뚱이 매달고 사는 삶/ 그래/ 밥줄에 매달려 사는 삶이 맞다."('삶' 전문)

시집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80편의 시가 실렸다. 도서출판경남. 102쪽. 1만 원.

/정현수 기자 dino999@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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