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320 5000여 대 납품 경험으로
누리호 시험발사체 제작 참여
코로나19 위기 속 기회 만들어
민간발사체 시장 진출 계기로
"지역 인재 붙잡을 정책 필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렀다. 1990년 보이저1호가 명왕성 궤도 근처에서 고개를 돌려 찍은 사진 속에서 지구는 그렇게 작았다. 한국은 오는 15일 '누리호' 2차 발사시험을 한다. 성공하면, 순수 국내 기술로 1t 이상 물체를 우주에 쏘아 올린 세계 7번째 사례다. 아직 지구 궤도에 올려놓는 수준이지만, 우주개발 강국으로 향하는 의미 있는 이정표다. 경남 도내 기업들도 다수 발사체 제작에 참여했는데, 특히 사천 항공기 부품 제작 기업들이 이바지한 점이 적지 않다. 그중 한 곳이 항공기 날개 제작기업 '에스앤케이항공(대표 이철우)'이다. 발사시험을 일주일 앞둔 지난 7일 이곳을 찾았다.

▲ 최중열 에스앤케이항공 상무가 지난 7일 본사에서 누리호 제작 참여 부품 모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최중열 에스앤케이항공 상무가 지난 7일 본사에서 누리호 제작 참여 부품 모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창우 기자

◇항공기 부품 '정직'이 생명 = "항공기 사고가 났을 때 1명이라도 생존자가 있으면 기적이라 부르잖아요. 부품사 한 곳, 노동자 한 명에 100~200명의 생명이 달린 셈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입니다. 완벽한 부품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은 우주발사체 제작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중열 에스앤케이항공 상무는 영국 에어버스 조립공장 납품을 기다리는 에어버스 A320 날개(주익) 상부 구조물을 소개했다. 항공기 주익 단면은 원통형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운데 부분에 연료 탱크가 있고, 앞(LE)·뒤(TE)·위(WTP)·아래(WBP) 구조물이 감싸고 있다. 이 중 에스앤케이항공 주력 제품은 WTP로, 비행기 창가 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때는 하늘 위 호텔이라 불렸던 A380 하부구조물(WBP)도 생산했었고, 보잉 B767 꼬리날개 수평안전판도 만드는 등 항공기 구조물 제작에 특화했다.

에스앤케이항공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참여로 2005년 회사를 창립한 이후 2008년 본격적으로 에어버스 납품 물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폭 3.45m, 길이 15.7m에 이르는 날개 상판을 가공·표면처리까지 할 수 있는 단일 공장은 국내에서 KAI 산청사업장과 에스앤케이항공뿐이다. 거대 구조물을 구속하는 장비, 연성금속핀(리벳)을 고정하는 기계(리베터) 등 설비 도입 비용만 50억~100억 원에 육박해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도 어렵다. 국제 항공품질경영요건, 에어버스 자체 승인 등 많은 인증을 주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만큼, 산업을 유지하는 데도 만만찮은 품이 든다. 그런 조건 속에서 현재까지 5000여 대 분량 A320 날개 구조물을 납품했다.

▲ 에어버스 A320 항공기 주익 상부 구조물(WTP)이 에스앤케이항공 공장에 보관돼 있다. /이창우 기자
▲ 에어버스 A320 항공기 주익 상부 구조물(WTP)이 에스앤케이항공 공장에 보관돼 있다. /이창우 기자

◇우주발사체 접목한 항공기 제작 역량 = 어렵게 쌓은 항공기 날개 제작 경험은 누리호 시험발사체(KSLV-II) 개발에 참여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에스앤케이항공이 참여한 부품은 발사체 1·2·3단에 걸쳐 있다. 아래서부터 1단 후방동체(열막음판·동체 상하부), 1단 탱크연결부, 2단 엔진 지지부, 2단 탱크연결부, 3단 엔진 지지부, 탱크연결 트러스, 3단 위성 지지부 등 총 7군데다. 하부 동체는 점화 온도와 하중을 버틸 수 있도록 강하게 설계했고, 상부로 올라갈수록 가볍고 얇게 만든다.

무엇보다 A320 날개 제작 경험이 있었기에 무리 없는 제작이 가능했다. 항공기 날개 상부 구조물은 기본적으로 알루미늄 합금판으로 만든 외판(스킨)과 지지대(스트링거)를 결합한 형태다.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데만 리벳 2만여 개가 들어간다. 이 같은 형태를 공학용어로 '스킨-스트링거' 구조라고 부른다. 적당한 경량성을 확보하면서, 외력에 버티는 충분한 응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항공기 부품 설계에 필수적이다. 최 상무는 "우주발사체 구조물도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라며 "길게 뻗은 날개와 달리, 외판이 원통형이고, 지지대가 세로로 배치돼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애초 우주개발 사업에 참여할 잠재력이 있었던 셈이다.

잠재력을 기회로 열어젖힌 장본인이 바로 최 상무다. 그는 현대모비스 출신 기술자로, 2002년 과학관측로켓(KSR-III) 사업 총조립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당시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조립장에서 발사체 구조·원리 등 전반적인 개발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항우연은 2015년 누리호 공동 개발·제작에 참여할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쟁입찰 공고를 냈는데, 마침 최 상무가 에스앤케이항공에 입사한 지 2년이 된 시점이었다. 회사가 보유한 기술에 KSR-III 조립 경험을 접목하면 입찰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고, 결국 입찰에 성공했다. 누리호 발사체 제작 참여 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신의 한 수'가 됐다. 하나는 코로나19 확산 사태에서 버틸 동력을 만든 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개발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확보한 일이다.

▲ 에스앤케이항공이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에 납품하는 한국 최초 민간 우주발사체 탑재용 산화제 탱크 모습.  /이창우 기자
▲ 에스앤케이항공이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에 납품하는 한국 최초 민간 우주발사체 탑재용 산화제 탱크 모습. /이창우 기자

◇ 발사체 시장, 또 다른 산업 될까 =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전 세계 항공산업은 완전히 쪼그라들었고, 에스앤케이항공 역시 힘든 시간을 버텨야 했다. 급기야 2020년 6월 에어버스는 항공기 제작수요 감소를 이유로 당분간 물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천 다른 부품 기업들은 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다행히 에스앤케이항공은 그동안 제작한 발사체 동체들을 항우연에 잇달아 납품하며 이 기간 회사를 지탱했다. 최 상무는 "다행히 한 명도 내보내지 않고 버텼고 이제 항공 수요 정상화를 앞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간 발사체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가 시도하는 한국 최초 민간 우주발사체(한빛-TLV) 개발에 함께한다. 이 발사체는 오는 12월 브라질 알칸타라 발사센터에서 첫 시험발사를 앞뒀는데, 에스앤케이항공은 여기에 탑재하는 산화제 탱크를 제작해 납품했다. 최 상무는 "회사가 쌓아온 비용 대비 성능 경쟁력과 누리호 제작 참여 경험이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민간 우주발사체는 주로 정부·민간이 각 분야에 활용할 소형 관측 위성(100㎏ 안팎)을 쏘아 올리는 수송 수단이다. 지금은 국내 기술이 없다 보니 '스페이스 X' 등 국외 발사체 제작 기업이 관련 발주 물량을 싹쓸이하고 있다. 최 상무는 "국방부 정보위성·기상청 날씨관측 위성 등 정부가 오는 2027년까지 궤도에 올려야 하는 위성만 300개 이상"이라며 "이번 시험발사 성공으로 성능과 경제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면, 커다란 시장이 열릴 거라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 상무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발사체 시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정부가 중장기적 구상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그래야 참여 기업들이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고, 개별적인 사업 전략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단발적인 제작·납품 이후 꾸준한 매출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지역에 우주개발 사업 역량을 유지하려면 유능한 인재들이 사천을 떠나지 않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창의적인 정책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구개발 인력들은 수도권 연구소에 모이고, 지역에는 생산 기지만 남아버릴지 모릅니다."

/이창우 기자 irondumy@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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