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마저 중앙 정치 바람에 흔들려
지방자치 안착 위해 인물·정책에 투표를

유권자도 자격시험을 쳐야 한다. 6.1지방선거 투표를 끝내고 나서 든 생각이다. 도지사부터 비례대표까지 총 7장의 투표용지를 받고 솔직히 좀 난감했다. 도지사, 교육감, 시장은 누구를 선택할지 결심이 섰지만 시·도의원 후보들은 이름조차 생소했기 때문이다. 정책은커녕 어떤 인물인지조차 모르고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 잠시 망설인 끝에 내가 선택한 건 줄 투표. 인물 대신 정당을 보고 줄줄이 찍었다. 줄 투표의 뒷맛은 찜찜했다. 후보 이름도 모르는 내가 투표할 자격이 있을까? 유권자 자격에 의문이 들었다. 후보의 자질과 능력, 공약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유권자 자격시험을 치고, 통과하는 자들만 투표권리를 주는 시스템을 상상했다. 그리고 예감했다. 나처럼 줄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면 창원시장은 재선이 어렵겠다고.

예상대로 현직 창원시장이 낙선했다. 운동화 시장이라는 별명처럼 일 잘한다고 꽤 인정받던 인물이 결국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어디 창원시장뿐이랴. 수년간 지역민에게 인정받았던 지역 일꾼들도 이번 바람에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그야말로 추풍낙엽.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오직 아는 건 1번과 2번뿐. 정당의 선호도에 의해 지방의회가 선택되었다. 파란색 바람이 불던 2018년과는 완전히 다른 바람, 2022년에는 빨간 바람이 지방자치단체와 의회를 강타했다.

4년 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을까? 아니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지방선거는 전국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출과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중앙에서 부는 바람에 따라 지역 일꾼을 선택한다. 실력이 아닌 어떤 바람이 부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라진다. 능력 있는 일꾼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지역도 모르는 낙하산 인사는 유권자의 압도적인 선택을 받는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이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일하는 시간을 쪼개 중앙 정치권에 줄을 대는 게 현명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지역민들의 바람보다 중앙 정치 바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인이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5월 중순. 엄마가 병원 진료차 창원에 왔다.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을 보며 엄마가 창원시장은 누가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는 내 대답에 엄마가 말했다. 남해는 현직 군수가 워낙 일을 잘해서 재선을 할 것 같다고.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남해 할매할배들이 바람이 아닌 인물을 선택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엄마 말대로였다. 6.1 지방선거 이후 남해군수는 경남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민주당 현직 지방자치 단체장이 되었다. 남해군민들은 바람 대신 인물을 선택했다. 남해군수의 지난 4년을 평가하고 다시 선택했다. 적어도 누가 남해발전에 필요한 일꾼인지 평가하고 선택한 흔적이 보인다. 거센 바람 앞에서도 소신투표를 한 남해군민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추앙의 마음을 전한다.

어떤 후보를 선택하든 그건 유권자의 권리이다. 하지만, 어떤 후보인지도 모르고 선택하는 것 또한 유권자의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그 폐해가 너무 크다. 그 책임을 오롯이 지역민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4년 뒤, 또 바람은 불 것이다. 파란 바람이 불지, 빨간 바람이 불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바람은 불 것이다. 그 바람에 휘청거리지 않으려면 유권자가 투표할 자격을 갖춰야 한다. 누가 지역의 일꾼인지, 어떤 정책이 지역을 발전시키는지 제대로 알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유권자의 수준이 어떠냐에 따라 지방자치의 미래도 달라진다는 사실. 4년 뒤에는 꼭 기억하고 싶다.

/김봉임 종합홍보기획 ㈜브레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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