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배부름은 음식 맛을 잃게 해
감당 못할 욕망 내려놓으면 삶도 행복

아침 산책길이다. 창밖에 안개가 희무스름하게 깔리면 도초산 전망대에 오른다. 오늘은 안개가 짙지 않아서 강 건너 반구정과 합강정을 낀 산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만 보인다. 낙동강을 끼고 도는 기음강(岐音江) 굽이에 자리 잡은 용산마을은 안개 낀 날 해가 뜨기 직전에 가면 그야말로 운해 속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마치 섬처럼 떠있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산 속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길. 뽕나무 열매가 가득 떨어져 있다. 지금이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지천으로 열리는 때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에 오디보다 좋은 간식거리가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지천으로 열려있는 오디를 따 먹지도 않을뿐더러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들 입맛이 그만큼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식성이 변한 것이 아니라, 옛날의 맛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도초산을 내려와 당포 쪽 습지 둔덕 길을 걸으면서 그 길에 있는 오디를 따 먹으니 어떤 오디는 맛이 없고, 어떤 오디는 단물이 짙게 배 있어 맛이 있다. 나무도 환경에 따라 맛이 다른 모양이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 입맛이 변하기 때문에 오디에서 옛날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배고픈 시절에는 뭐라도 맛이 있었을 터이지만 먹을거리가 풍족한 때는 더 맛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오디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닐까. 적당한 배고픔이 주는 음식의 맛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이 아닐까. 산에서 먹는 라면 맛이 일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산길을 오르면서 적당한 배고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 공복에 산책길에서 따 먹은 오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적당한 배고픔은 음식의 맛을 돋우지만 지나친 배부름은 음식 맛을 잃게 한다. 적당한 양, 적당한 일, 적당한 돈이 주는 행복이야말로 참된 행복이요, 참된 삶의 맛이 아닐까. 자연의 맛은 적당할 때 균형을 이룰 수 있고 그때야말로 참된 맛을 즐길 수 있다.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지 않으면 끝없는 부를 추구하려는 욕망의 그림자만 놓여 있을 뿐이다. 한정된 인간의 수명이 다 감당하지 못할 욕망의 무게를 내려놓는 순간 행복한 삶이 보일 것이다.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아는 적당한 욕망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적당하다는 말은 정도에 알맞거나 꼭 들어맞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용의 미덕을 말하는 것이다. 참된 맛을 되찾으려면 먹을거리에도 중용의 미덕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오디의 맛을 잃어버린 것은 세대가 다르기 때문일 터이지만, 옛날의 오디 맛을 아는 사람들이 옛날의 오디 맛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음식의 욕망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언제 아침 기운이 채 뻗치기 전에 이슬을 머금은 오디를 따 먹을 시간이 있겠는가? 어린 시절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배고픈 차에 따먹었던 다디단 오디 맛을 누릴 시간이 있겠는가? 과거는 단순히 되돌아보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시의 아침은 하루의 일상을 준비하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지만 시골의 아침은 오디를 따 먹고 즐길 수 있는 여유의 시간 속에 놓여 있다. 햇살이 땅에 내리기 전에 풀잎의 이슬을 밟으면서 들판 뽕나무에 매달린 오디를 먹어보라. 잃어버렸던 옛날의 오들깨 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을 찾는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삶을 풍족하게 할 것이다.

/황선열 인문학연구소 문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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