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5세가 넘어섰는데 ○○○원에 직접 고용되는 요양보호사 모집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고, 생애 처음 면접을 보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겨우 면접을 무사히 끝내고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고 마치 새내기 첫 직장 출근처럼 기쁨 반 설렘 반으로 출근했다. 병실 출근인 줄 알았는데 코로나가 심해서 일반병동이 아닌 코로나 병동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걱정이 앞섰다.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걸리면 어떡하지?' 방호복 입는 순서, 벗는 순서, 손 씻기 순서 등 너무 힘들었다. 입고 벗고를 수없이 하면서 이틀간의 실전투입 연습을 끝냈다.

마침내 병실 들어가는 첫날, 방호복 입고 완전 무장하고 들어갔는데 일도 시작하기 전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숨쉬기가 갑갑하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 얼굴에 땀이 흘러 눈을 뜰 수가 없다. 환자들을 볼 때 측은함과 잘 돌봐 주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간호사들도 열심히 간호하는 것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 넣는다. 내 생애 제일 큰 일을 했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러고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보람과 즐거움 속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18년 종사한 간병사 직업 인생은 요양병원 중환자실, 경상남도가 만든 ○○○병실, ○○병원 등에서 보낸 세월이다. 환자 옆에서 식사를 도와드리고, 대소변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잘 주무시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옆에서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던 야간시간,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에게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하여 말하면서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당당하게 간병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속을 말하라면 참 난처했다. 협회 소속, 용역, 파견회사 등으로 일하면서 18년이 지나서야 2개월의 짧은 계약기간이지만 병원 소속의 직접 고용된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우리 간병사들은 협회를 통해서 일자리를 얻어 대부분 요양병원에서 근무한다. 그런데 병원 소속은 아니다. 병원에서의 어려움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의논할 상대도, 호소할 상대도 병원이 아니다. 한 달 힘들게 일하고 받는 보수는 협회비 일정금액을 제외하고 받는다. 24시간 꼬박 병원에서 격일로 또는 집에 오는 날 없이 내내 일하고 있어서 가족과 친구와 만남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이 일이 소중했다. 그러나 18년의 막바지에 했던 2개월의 직접고용 기간 근무 중 휴식이 규칙적으로 있는 것, 근무 중 노동자 안전을 위한 교육 등을 경험했다. 이제야 나는 소속이 있어 긍지를 갖고 일하게 되는 것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됐다.

/강금옥 창원지역 활동 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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