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편 묶은 〈달빛을 보내주세요〉

"좋은 날을 받아 향을 사르며 절을 하고 나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내다가 물이 자작해지면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우물 속에 넣고 바닥으로 내려가셨다. 검은 뻘로 변해버린 낙엽과 흙먼지는 삽으로 두레박에 퍼 담아 바깥으로 올려 보내고, 자갈은 맨발로 자근자근 밟고 짚수세미로 벽 틈의 푸른 이끼까지 꼼꼼하게 닦아내셨다. 스며들 듯 천천히 새 물이 솟아나고 뿌옇던 물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우물 청소가 제대로 끝난 것이다."

신애리 시조시인은 산문집 <달빛을 보내주세요>(사진)를 내면서 책을 엮는 일을 우물 청소에 비유했다. 2006년 <시조월드>를 통해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이듬해 <아세아문예>에서 수필가로 등단했다. 이 산문집에는 2007년부터 활동하며 써온 수필 57편이 다섯 개의 묶음으로 나뉘어 실렸다.

손정란 평론가 글을 보면 신 시인이 책을 내면서 왜 우물청소에 비유했는지 알 수 있다. "작가의 손에서 마침표가 찍혀 나온 산문을 석 달 열흘이 더 지나도록 읽고 다듬기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 즐거움이었고, 희망이었다가 나중에는 얽매임이었고, 몸싸리이는 고통이었다가 마침내 굵고 팽팽한 삶의 무늬를 발견했다. 작가에게 문학이 주는 무게감 말고도 서른여덟 해를 교직에 몸담았던 이력이 보태어져 있었으므로."

손 평론가는 이번 산문집을 두고 "소재의 선택과 그 소재를 밀면서 이끌어내는 주제, 인물과 사건의 구성이 현실에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으니 현실주의가 예술 방법임을 그는 말하고 있다"고 평했다.

신 시인은 진주교대를 나와 1981년 창녕 길곡초교에서 교직 활동을 시작해 2020년 진주 수정초교에서 정년퇴임했다. 시조시인 등단 이후 2007년부터 정규수업 전 한 시간 남짓 '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 여행'을 진행했고,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쓴 작품을 모아 <꿈나무들의 속삭임> 등 시조집 14권을 발간했다.

/정현수 기자 dino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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