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관련 규정 여전해
현장에서 보조 여부 갑론을박
"본 투표선 개선"해명 반복만

"신체장애가 없으면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7일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 투표소를 찾은 발달장애인 이재석(32·창원시 성산구) 씨가 수차례 들은 말이다.

이 씨는 신체장애는 없지만 한글을 몰라 옆에서 후보자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줘야 한다. 이 씨 투표를 돕고자 함께 온 창원시장애인인권센터 직원이 이런 사정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김유경 창원시장애인인권센터 팀장은 "재석 씨 같은 경우는 한글을 읽을 줄만 모르지 후보 이름을 말해주면 누구인지 다 안다"면서 "특히 지방선거 때는 투표용지도 많고 후보도 빽빽해서 옆에서 읽어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팀장이 명확한 기준을 설명해달라고 항의하자 투표소 선거사무원은 성산구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산구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와의 통화에서도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김 팀장은 "선관위에서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해당 투표소 참관인 8명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며 "사실상 투표보조 받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토로했다.

김 팀장과 성산구선관위 관계자의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 이 씨는 투표소 밖 복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1시간 넘게 이어진 통화 끝에 선관위로부터 투표보조가 가능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마저도 현장에 있던 경남도선관위 관계자가 중재를 해준 끝에 가능했다. 어렵사리 투표를 마친 이 씨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며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고 힘들었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기자가 현장에 있고 장애인인권센터 직원이 여러 차례 항의를 하니까 못 이기는 척 받아준 느낌"이라며 "가족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발달장애인이라면 투표 보조를 못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시각 또는 신체 장애인만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 투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김유경 창원시장애인인권센터 팀장이 성산구선관위에 항의하는 것을 발달장애인 이재석(왼쪽) 씨가 바라보고 있다.  /박신 기자
▲ 김유경 창원시장애인인권센터 팀장이 성산구선관위에 항의하는 것을 발달장애인 이재석(왼쪽) 씨가 바라보고 있다. /박신 기자

하지만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발달장애인이 투표 보조를 못 받는 건 차별이라며 정당한 편의제공을 권고한 바 있다. 또한, 지난 2월 법원도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 임시조치 신청 건'에 대해 조정 성립을 결정했다.

이처럼 선관위 해석에 따라 발달장애인도 투표보조를 받을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발달장애인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었다.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소송을 맡은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선관위에서 유연하게 법을 해석하면 발달장애인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공직선거법을 핑계로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관위가 움직이지 않으니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법에 발달장애인 투표보조를 명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남도선관위 관계자는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관련해서 현장에서도 유연하게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며 "선거사무원이 선관위 직원이 아니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본 투표 때는 문제없이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박신 기자 pshin@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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