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모르는데 '동성애 탓'
사회분열·공포감만 조성해

좋은 뉴스를 생산하는 만큼 나쁜 뉴스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연수·이원재 기자가 매주 목요일 유튜브 경남도민일보 채널에서 '뉴스 비평 자신 있게(뉴비자)'를 선보입니다. 이번 주는 이원재 기자입니다.

영국을 시작으로 20여 일간 15개국에서 '원숭이두창'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원숭이두창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흔히 발병되는 인수공통전염병입니다. 비말과 피부 접촉 등으로 전파되며 천연두 백신으로 85% 예방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에서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사람이 감염된 후 17일 영국에서 네 명이 추가 감염됐습니다. 추가 감염자는 동성애자거나 양성애자였습니다. 국내 언론은 '동성애'와 '감염'에만 주목합니다. 마치 동성애가 감염 원인인 것처럼 보도한 셈입니다.

△유럽 휩쓰는 '원숭이두창'…에이즈 사촌이 나타났다?(19일 머니S) △온 몸 수포 '원숭이두창' 확산 조짐…남성끼리 성관계 주의보(20일 중앙일보)

<머니S> 기사 제목에서는 원숭이두창과 에이즈 사이 연관성이 있는 듯하지만, 정작 기사 내용에는 에이즈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원숭이두창·에이즈, 인과관계가 부족한 세 단어를 무리하게 연결지어 제목을 달았습니다. <중앙일보>는 남성 간 성관계에 '주의보'를 내리며, 원숭이두창 원인이 동성애로 확인된 양 전합니다.

△"문란한 성생활이 원인?"…男끼리 성관계한 후, 치명적인 전염병 걸렸다(21일 데일리안)

이 기사는 동성애와 '문란한 성생활'을 연결짓는가 하면, 원숭이두창은 제목에 쓰지도 않습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라는 말로 공포감만 증폭시킬 뿐입니다.

이러한 섣부른 보도는 혐오를 조장합니다. 원숭이두창은 원래 성병이 아니기 때문에 동성애와 관련한 감염은 조사 중이고, 전문가들도 성병으로 보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합니다. 영국 킹스칼리지에서 바이러스학을 연구하는 스튜어트 닐 교수는 "성적인 관계로 전염이 됐다고 보는 것은 조금 지나치다"고 밝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질병 때문에 사람들의 집단에 낙인을 찍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감지되지 않은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발병을 종식시키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UN에이즈계획(UNAIDS)은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보도 중 일부가 동성애 혐오를 강화함으로써 낙인 효과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2006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발간한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에는 에이즈 감염인 성정체성을 따져 차별하는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원재 기자 si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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