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중1 시절(1953년) 일화. 충북 영동 산골의 가난에 찌든 삶 속의 학생들에게 운동화란 것은 차라리 그림의 떡에 가까웠습니다. 헌 검정고무신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경제 피폐의 결과 실상입니다.

각설하고 어느 날 국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다 <새 고무신>이라 쓴 뒤 즉석 단문 짓기를 명했습니다. 단 '신' 자가 6번 이상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기억이 희미한 필자의 글. '누덕누덕 헌 신 아닌 새 신! 신었다 벗었다 신났다. 아 기도! 신이시여 이 신이 쉬 닳지 않게, 찢기지 않게 지켜 주시옵소서. 신신당부이옵니다'!

그 시절 69년 뒤인 이달 14일 자 <조선일보>(주말판)에 <스님·농부 신발 아닙니다…고무신이 'K-플랫슈즈'로 뜬 이유/촌스러움과 세련미 사이/MZ세대가 고무신 신는 법>이 소개되어 격세 감회가 컸습니다. 아, 아련한 옛날이여.

 

박가분·동동 구리무와

세월 함께한 검정고무신

'새벽 화륜차 고동 소리에

고무공장 큰애기 벤또밥…'

그 노래

회상 추억의 발에도

검정고무신을 신겨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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