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 알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평화로운 곳도 없기에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도시에서 결혼해서 도시 아파트에 살고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며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었건만 도무지 도시생활에 적응이 안 된다는 이가 있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면서 친구들과 밭두렁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고 개구리 잡고, 둠벙이나 개울에서 미꾸라지며 송사리를 잡으며 놀던 때가 그리워서 그럴 것이다. 시골살이란 게 어릴 때의 추억만큼이나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쯤은 이미 모르는 바 아니면서도 그렇다. 남자들은 퇴직하면 저축해 놓은 것도 좀 있고 다행히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부모님 사시던 시골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 집을 짓거나 옛집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서 살면서 마당에 꽃밭이라도 가꾸고, 계절 따라 텃밭에 소일거리로 푸성귀라도 심으며 유유자적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귀촌을 꿈꾼다.

그러나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던가? 우선 몇 십 년을 함께 산 아내가 앞으로 몇 십 년을 함께 살아갈 이유로 귀촌을 반대한다. 도시에 살아야 병원도 가깝고 대형마트도 가까워서 급하면 달려가고, 한가할 땐 친구들과 커피숍도 다녀야 하는데, 이런 모든 문화생활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자식들 키우고 집안일 하면서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고운 청춘을 다 보내고 나이 들어 이제야 좀 여유롭게 여행도 다니며 친구들과 자주 만나 수다도 떨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새로 배우며 접어두었던 결혼 전 꿈도 다시 도전하고 싶은데, 시골로 가 햇볕에 얼굴 그을리며 친한 사람도 없는 곳에서 남편 얼굴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게 달갑지가 않다. 게다가 늙는 것도 서러운데 밭일이나 하면서 잡티가 끼고 주름이 쉬 느는 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자들은 산자락에 아무렇게나 자란 복숭아나무에서 개복숭아를 한 소쿠리 따서는 효소를 만든다는 얘기며, 야생 뽕나무에서 뽕잎차를 만드는 얘기며, 시골집 마당 평상에서 수박 먹는 얘기들을 SNS에서 사진과 함께 접하면 시골살이 환상은 더 커진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새들이 지저귀고 밤이면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자욱한 가운데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TV 속 시골풍경도 시골살이 환상을 더한다. 개복숭아와 뽕잎을 따다가 진드기에 물려 가려움에 몇날 며칠을 고생하는 건 숨겨진 얘기니 그럴 것이다. 앞마당이며 밭두둑에 풀은 아침에 눈 뜨면 한 뼘씩 자라서 예초기를 메고 살아야 하는 현실도 결코 아름답지가 않다. 모기와 날파리가 들끓고 툭하면 집 안으로 개미나 지네가 들어와서는 자다가 놀라서 불을 켜고 이불을 털어야 하는 일도 숨겨진 시골살이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할지라도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만족한 시골살이가 없는 건 아니다. 시골만큼 믿고 의지할 이웃간 교류가 활발한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SNS를 통한 농산물 직거래로 마을 경제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데, 농촌기본소득을 보장함으로써 귀촌인구를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도정 승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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