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더하기 (3) 사천 습지 + 전설

남강댐·진양호 잇따라 나면서
사람 떠난 마을, 습지로 변해
160만㎡ 규모 풍성한 자연 자랑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옥녀봉에 올랐다가 내려가는데 인적 드문 비탈길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낯선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원통형 얼굴에 난 검고 흰 줄무늬, 오소리였다. 얼어붙은 모습도 잠시, 오소리는 되돌아 엉덩이를 보이며 비탈길을 올랐다. 야생 오소리를 실제로 볼 줄이야. 옥녀봉 가까이 완사습지는 또 어떤가. 160만㎡ 규모 습지는 자연의 속내를 한껏 품은, 쉽게 볼 수 없는 원시림 그 자체다.

▲ 사천시 곤명면 옥녀봉 오르는 길.  /최환석 기자
▲ 사천시 곤명면 옥녀봉 오르는 길. /최환석 기자

◇완사습지 = 원시의 모습을 한 완사습지는 남강댐과 진양호 배후습지다. 인공 구조물이 자연습지를 조성한 셈이다.

진주시 판문동과 내동면 삼계리 사이 남강에 세워진 남강댐은 다목적 댐이다. 1934년 1차 공사, 1969년 3차 공사를 마치고 2001년 보강 끝에 완성했다.

남강댐이 서면서 인공호수인 진양호가 났다. 진주와 사천 일대는 긴 시간 침수피해를 겪었다. 남강댐을 세워도 수해가 잇따르자 댐을 높였는데 자연스레 진양호도 넓어졌다.

원래 마을이었던 곳이 잠기면서 습지가 되었다. 시멘트길 같은 것만이 흔적으로 남았다. 사람이 떠난 곳은 여러 야생동물 터전이 되었다.

▲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만지교에서 내려다본 완사습지.    /최환석 기자
▲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만지교에서 내려다본 완사습지. /최환석 기자

사천시 곤명면 완사·작팔·구몰·성방마을에 걸친 완사습지를 탐방하려면 완사천이 남강댐으로 흘러드는 언저리인 완사마을을 시작점으로 삼길 권한다.

완사마을에는 완사전통시장이 있어 탐방 전후로 목을 축이고 배를 불리기에 알맞다. 완사전통시장은 1·6일 장이 서는 오일장이다.

완사습지는 규모가 커서 한눈에 담기 쉽지 않다. 전경을 보려면 작팔교나 만지교를 찾아서 내려다보면 된다.

완사습지 품에 안기려면 군데군데 남은 낡은 시멘트 길을 찾아 들어서면 된다. 바깥에서 내려다보는 전경과 매력이 또 다르다.

완사습지를 관통하는 완사천은 애써 공을 들이듯 차분히 흐른다. 바깥과는 분명히 다른 시공간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제각각 달리 내는 새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버들 군락의 진한 녹음은 눈마저 부시다. 20여 년 그대로 둔 결과가 이토록 풍성한 원시라니.

완사습지처럼 규모가 큰 습지는 선뜻 발을 들였다가 빠져나가지 못할 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그럼에도 느긋하게, 가만히 품에 안겨 풍성한 자연을 느끼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완사습지를 더 느긋하게 즐기려면 기차를 타도 좋겠다. 경전선 완사역에서 완사천까지는 1㎞가량 거리인 데다, 적당히 조절해서 걷고 쉬면 웬만한 완사습지 매력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완사마을 가까이 자리한 곤명생태학습체험장도 머물러 쉬기 알맞은 공간이다. 생태연못, 수생식물관찰원, 야생화체험장, 산책로를 갖췄고 주차장과 정자, 체육시설 같은 기본 편의도 챙겼다.

▲ 옥녀봉 임도에 핀 금계국 .   /최환석 기자
▲ 옥녀봉 임도에 핀 금계국 . /최환석 기자

◇옥녀봉 = 베 짜는 솜씨가 도드라졌던 옥녀라는 여인이 민 도령과 사랑에 빠졌다가 고을 원님 훼방에 낙담, 덕천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인상을 준다.

워낙 산지가 뚜렷한 나라라 조금이라도 알려진 산은 신화나 전설을 나름 갖췄다. 고갯길은 다분히 애환이 엮인 길로 통한다.

옥녀가 몸을 던졌다는 벼랑을 지나는 혼인 행차가 매번 화를 당하자 옥녀봉과 완사라는 이름으로 넋을 기렸다고 한다.

완사(浣紗)는 마전이나 빨래를 하는 일이라는 뜻인데, 옥녀가 베를 짜 덕천강에 씻어 내다 팔았다고 하니 어찌저찌 뜻이 엮인다.

170.7m 옥녀봉에 오르려면 사천시 곤명면 고월마을에서 발걸음을 떼면 된다. 시작점을 찾지 못해 마을 어귀 삼성약국에 들러 물었더니, 고작 50m 떨어진 데 표지판이 있었다.

옥녀봉 산길은 좁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평일 오전에 들르긴 했으나 왕복 1시간 30분가량 구간을 홀로 걸었는데, 어느 때나 발길이 드문 곳인 듯 때묻지 않은 산길이었다.

옥녀봉까지 2㎞에서 1.5㎞가량 남은 구간은 경사가 30~40도 즈음이라 격하게 걷지 않아도 된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듯한 구간도 금방 내리막이 나와 쉬엄쉬엄 걷기 좋다. 딱 오른 만큼 내려간다.

끊어질 듯 아스라이 이어지는 산길에서 마을 경관은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숲이 울창한 터라 조망하는 맛이 있는 산길은 아니지만, 여러 산새 소리를 가만히 듣기에는 아주 알맞다. 새들은 곁을 내줄 듯 내주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다.

▲ 옥녀봉 임도에 핀 때죽나무 꽃.   /최환석 기자
▲ 옥녀봉 임도에 핀 때죽나무 꽃. /최환석 기자

옥녀봉 전망대 가까이 난 임도 탓에 잠시 호흡이 끊기지만, 금방 산길로 이어진다. 만일 걷기 어렵다면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옥녀봉을 크게 돌 수도, 전망대에 들를 수도 있다.

조망이 아쉬웠다면 옥녀봉 전망대에서 덕천강 경관을 만끽하면 된다. 지리산 웅석봉 줄기에서 발원한 덕천강은 이곳에서 남강과 맞닿는다.

내려가는 길은 임도를 골랐는데, 역시나 인적이 드물어 걷기 나쁘지 않다. 대나무숲 사이로는 진양호가 얼핏 보인다.

임도를 따르면 지금 이 시기에 피는 찔레꽃, 금계국, 때죽나무 꽃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인간이 길들인 모습이 아니어서, 야생 그대로 드문드문 핀 모습이라 더욱 정겹다.

개발을 막은 덕분에 자연환경이 좋아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산행을 하다 오소리를 마주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눈이 동그래진 오소리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최환석 기자 che@idomin.com

※이 기사는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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