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 연결이 굳건할수록 강하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갈매기의 꿈>의 작가 리처드 바크는 <외롭지만 함께>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생긴다." 이 말에서 나는 마치 바둑의 사활문제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사활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생긴다. 흑이 먼저 두든 백이 먼저 두든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골몰하다 문득 우리 인생사의 죽고 사는 문제도 돌이켜 생각게 만든다. 지난 4월 25일 나의 스승님이자 바둑 제자인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께서 작고하셨다. 사람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만물에 대한 애정의 깊이가 남다른 분이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육안에 머물지 말고 심안과 영안의 눈을 강조하셨다. 현상에 얽매이는 삶이 아닌 현상 너머의 눈. 그것이 심안과 영안인 것이다. 바둑은 고수가 될수록 이러한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임이다. 현상은 이러이러한 모양이 나타나지만 그 현상의 바탕에는 나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을 심안의 눈으로 읽고 천변만화하는 변화수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수는 얼굴이 벌게지게 하기도 하고 귀가 붉어지게 만들 때도 있다. 겉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내면에서는 무수한 질문과 답이 교차한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이 문제들을 즐긴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문제 자체에 몰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혈압이 오르기도 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를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가 있는 바둑에서는 상대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문제를 보고 읽고 생각하고 감탄한다. 수읽기는 외롭지만 함께인 것이다. 거기에서 상대의 심리를 파악한 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현현기경이나 기경중묘와 같은 고전 사활문제를 풀다 보면 해결할 때의 기쁨도 기쁨이거니와 문제 자체에 대한 기쁨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접할 수 있다니! 수백 년 전, 바둑의 고수들이 이 문제를 만들어 냈을 때의 호흡까지 느껴진다. 시공을 초월해 그 바둑고수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상상을 한다. 한두 시간의 고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낸 이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 마음을 읽고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환희와 감동이란 세상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 나의 삶과 죽음은 어느 선상에 와 있는가. 젊은 시절, 아무렇게나 두어서 낭패를 본 경우가 적지 않았는가. 또는 지금 나의 삶의 방향들이 착수하기에 올바른 곳인가, 손을 빼야 하는 곳인가. 복기하듯 지난 삶의 수순을 되돌아보게 된다.

'외롭지만 함께' 많은 사람들과 바둑을 두어왔다. 한 수, 한 수 정성 들여서 놓았던 수도 있었고 착각의 덜컥수를 놓았던 적도 많았다. 내 삶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돌을 놓았던 것이 아닌지,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나자 반성하게 되었다. 자신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바둑돌의 연결이 굳건할수록 강해지고 끊어지면 약해지는 것처럼.

스승님께서 바둑을 두실 때면 나에게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나는 두 집만 나면 됩니다. 이 넓은 바둑판에서 두 집만 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지요."

나는 내 인생에서 두 집을 났을까. 이 드넓은 우주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딱 두 집. 5월 22일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제13회 경상남도 도지사배 바둑대회가 창원 용마고에서 열렸다. 모처럼 경남의 여러 기우들과 어울려 함께 바둑을 두었다. 외롭지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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