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평론가이자 단국대 명예교수
근대 초기∼현대 극예술 자취 담아
딱딱한 학술서 탈피해 쉽게 정리
"연극사는 생존 위한 저항운동사"

딱딱한 논문 형식이 아닌, 이야기로 풀어낸 한국 연극사가 나왔다. 평생을 연극 평론과 강의로 살아온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가 한정된 독자에 머물렀던 '연극전공서'에서 탈피해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의 대한민국 연극사를 새롭게 풀어냈다.

"그리하여 내가 마치 조선시대의 전기수처럼 대학 연구실을 나와 장터나 길섶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연극이 얼마나 어려운 세상을 뚫고 여기까지 와 있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듯이 썼다."

유 교수의 문제 인식은 이랬다. "한평생 연극사를 공부하면서 그에 관한 학술 저서를 여러 권 펴냈지만 언제나 독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솔직히 딱딱한 문장에다 각주가 주렁주렁 달린 책에 일반 대중이 관심을 둘 리 만무했다. 사실 연극사 연구도 궁극적으로는 극예술의 부흥에 보탬이 되어야 할진대 상아탑의 담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책의 제목에 '운동'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유 교수는 연유를 설명했다.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근대사는 임진란 때 이상으로 빈곤, 피압박, 동족상잔, 혁명 등 고난의 과정을 겪은 격동의 역사였다. 그런 질곡의 역사를 헤쳐 온 우리 연극은 자연스럽게 생존을 위한 거친 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처럼 우리 연극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노래하고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영혼의 구원을 찾을 여유 없이 오로지 거대한 불행과 마주하여 자기방어를 위한 저항의 고달픈 도정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 연극사를 일반적인 예술사가 아닌 생존을 위한 저항운동사라고 본 것이다."

굳이 제목에 '21세기에 돌아보는'이라고 붙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의 문화 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다. 세기가 바뀐 지도 20년이 훌쩍 지나간 오늘날, 달라진 현대의 연극계를 조망하며 나는 한국 연극운동사를 다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 극예술연구회 창단 공연 <검찰관> 출연자 기념사진. /책 갈무리
▲ 극예술연구회 창단 공연 <검찰관> 출연자 기념사진. /책 갈무리

책은 1부 근대 초기의 전통 공연예술, 2부 신파극부터 악극까지, 3부 민족의 자각과 민중극의 태동, 4부 엄혹한 시대, 혼돈의 연극계, 5부 한국전쟁 전후의 연극운동, 6부 연극의 재건과 대중화, 7부 급변하는 사회, 한국 연극의 비상이라는 차례로 연극사가 정리되어 있다.

책장을 넘기다가 눈에 들어오는 몇몇 연극사의 장면을 인용한다.

"극예술연구회 젊은 멤버들의 좌충우돌하는 의욕과 패기에 기성극계는 아연 긴장하는 한편 반발도 적지 않았다. 특히 당대 입심 좋기로 이름난 배우 겸 만담가였던 신불출은 극연 비판의 선봉장이었다."(268쪽)

배우 추송웅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연극 인생을 걸고 모노드라마에 도전키로 결심한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역사는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를 한 것이다. 그는 또 어떤 배우든지 세월 속에 잉태되고 세월과 함께 사라져간다면 적어도 15년은 되어야 프로페셔널한 배우가 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 1977년 초부터 모노드라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카프카의 유명한 단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각색한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을 대본으로 확정한 그는 스스로 기획·제작·연출·연기·분장·장치 등 1인 6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 한 칸 없는 그로서 제작비 100만 원의 마련이 난제였다."(472쪽)

유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현재 한국 연극의 발전을 위해 해소되어야 할 문제로 '전용극장의 확보'와 '연극의 기업화'를 꼽았다. "연극인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전용극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예술성 높은 고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 연극도 이제는 기업화해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사회 문화적 기능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지원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도 장기적 안목에서 더욱 근본적 처방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푸른사상. 670쪽. 5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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