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9기 통영·고성 나눠 분포
5∼6세기 축조된 다곽식 묘제
금 고리귀걸이 등 유물도 출토

"보세요. 이쪽이 행정구역 경계거든요. 여기서 한 발짝 떼면 통영, 반대로 한 발짝 떼면 고성이에요. 아주 특이하죠. 이런 유적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재밌는 것 같아요. (웃음)"

김해시 가야사복원과 여창현 학예연구사는 지난 13일 오후 3시께 통영 광도면 황리에 있는 팔천곡고분군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팔천곡고분군은 통영에서 최초로 규명된 가야유적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발견된 고분은 9기. 북쪽에 조성된 6호분 일부와 5·4호분은 고성군에, 1·2·3호분과 7·8·9호분은 통영시에 속한다. 통영 광도면 황리와 고성 거류면 신용리 경계면에 팔천곡고분군이 조성돼 있다.

"팔천곡고분군은 소가야 권역에 속해있어요. 지금이야 편의상 행정구역이 고성과 통영으로 나뉘어 있지만, 가야 때는 여기가 통영이고 저기가 고성이라는 개념이 없었죠. 통영에서 가야유적이 처음 발굴됐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여기는 고성이나 다름없는 곳이에요. 오늘 현장에 처음 방문해봤는데 고분 규모가 생각보다 크네요. 놀랐어요. 20m 넘는 고분도 보여요."

▲ 통영 팔천곡고분군. 고분 주변으로 잡목과 잡초가 우거져 있다.   /최석환 기자<br /><br />
▲ 통영 팔천곡고분군. 고분 주변으로 잡목과 잡초가 우거져 있다. /최석환 기자
 

가야유적이 드문 통영지역에서 팔천곡고분군 정체가 확인된 건 2004년이다. 고성과 통영 경계인 황리에서 확인됐다. 발견 전후로 문화유산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팔천곡고분군 유적 분포범위는 약 11만 5000㎡로 추정된다. 고분 높이는 7~21m 내외다. 여기서 동쪽으로 약 7㎞ 떨어진 거리에 고성 송학동고분군 등 소가야 중심지가 위치한다.

2020년 11월 3일∼12월 7일 경상문화재연구원이 팔천곡고분군 7·8호분 발굴조사(460㎡)를 벌여 내놓은 조사 보고서를 보면, 7·8호분은 소가야 다곽식 고분군임이 밝혀졌다. 다곽식은 한 봉토에 2~3기 이상 석곽 등 무덤이 조영된 묘제를 뜻한다. 소가야에서 주로 행해지던 무덤 양식이다. 팔천곡고분군 역시 무덤 1기에 석곽 2~3기가 묻혔다. 고분군 축조 시기는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이다. 고분 안에서는 금으로 만든 고리귀걸이와 굽은옥, 대롱옥, 유리구슬 목걸이, 철제 큰칼, 굽다리접시 등 소가야 계통 유물이 출토됐다.

"묘를 축조하면서 흙을 같이 쌓아 봉분을 만드는 게 내륙의 봉분 축조방식이거든요. 반면 고성이나 통영 등 소가야 세력은 우선 둥글게 봉분을 먼저 구축하고, 그다음에 무덤 위쪽을 파내어서 안에 무덤을 만들어요. 아주 큰 차이죠. 다곽식 고분은 봉분 하나에 2~3기, 많게는 6기 이상이 들어가는데 여기는 봉분 하나당 2~3기 정도가 들어가는 형태예요."

▲ 팔천곡고분군 9호분 출토 유물.  /통영시
▲ 팔천곡고분군 9호분 출토 유물. /통영시

여 학예사는 팔천곡고분군 일대에 고성 송학동고분군 다음으로 규모가 큰 계층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규모나 유물을 놓고 봤을 때, 팔천곡고분군은 고성 중심 세력인 송학동고분군 다음으로 세력이 큰 집단, 그러니까 소가야 중하위계층이 머물렀다고 볼 수 있어요. 고성 신용리고분군과 동일한 집단이 여기에 있던 것으로 판단돼요. 앞서 신용리고분군에서 조사된 고분수와 팔천곡고분군의 무덤수를 합치면 100여 기가 되거든요. 이곳 인근으로 고분 100여 기가 있다는 건 아주 큰 세력이 있던 거라 할 수 있는 거죠."

주변을 훑어보니 팔천곡고분군은 산 가지능선이 아니라 주 능선에 조성된 형태였다. 자연 지형을 이용해 산 위쪽에 고분군을 만든 구조라 기존 고분(7~21m)보다도 규모가 커 보였다. 고분 위로는 솟아오른 나무가 적지 않았다. 잡초도 무성했다. 발굴조사 이후 고분 주변에 원형 훼손을 막고자 쌓아놓은 모래주머니는 흙이 쓸려 내려가 땅 위로 일부 드러나 있기도 했다.

유적 사이로 국도 77호선 지나
도로 확장 추진에 훼손 우려
전문가 "도 기념물 지정해야"

팔천곡고분군 정중앙으로는 도로(국도 77호선)가 나 있었다. 유적 사이로 도로가 관통한다. 산을 반으로 잘라 길을 냈고, 이 때문에 유적은 양 갈래로 갈라졌다. 도로 내기에 앞서 진행됐던 조사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 등이 다수 수습됐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2차로 도로를 4차로로 확장하는 공사를 계획 중이다. 이를 위해 측량 작업을 하고 있다. 국도 77호선 도로 확장 계획을 보면, 고분 8기가 확장 구간에 포함돼 있다. 초기 계획대로 공사가 강행되면 기존 고분이 모두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공사 조정을 국토관리청에 요구한 상태이며, 국토관리청은 사업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경남도는 추후 조정안을 본 뒤 팔천곡고분군을 대상으로 도 지정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경상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자문위원단은 당시 조사 의견서에서 "이번 조사 구역 외 별도 구역도 추가 조사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팔천곡고분군 보존을 위해 77번 국도 확장공사 시에도 유적 보존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썼다. 여 학예사는 "팔천곡고분군은 통영에서 처음 확인된 가야유적인 만큼 유적 보존 차원에서 국가지정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도 기념물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 팔천곡고분군 벽석이 드러나 있다.  /최석환 기자
▲ 팔천곡고분군 벽석이 드러나 있다. /최석환 기자

기존 구간을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할 경우 유적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팔천곡고분군 인근 마을인 춘원마을 주민 사이에서는 도로 확장이 우선이라는 말이 적지 않게 나온다.

지난 13일 만난 김동운(70) 춘원마을 이장은 "차량 통행량이 많음에도 길이 좁아서 주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문화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문화재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좁은 도로를 쌩하고 달리는 차들이 많아 마을 앞 도로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며 "사고 방지 차원에서라도 도로 확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60년간 팔천곡고분군 인근에 터를 틀고 살았다고 밝힌 김종규(69) 씨는 "문화재로 등록해서 제대로 보존·관리할 계획이 있는 거면 몰라도,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방치해둘 거라면 예정대로 도로 확장공사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어려서부터 문화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간 문화재가 관리되는 걸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관리청은 공사 계획과 관련해 아직 답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권재은 부산국토관리청 주무관은 "문화재청과 협의 중이며, 현재로서는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 협의가 끝나 공사계획이 확정되는지도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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