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3) 기성금 현실화가 인력난 푸는 열쇠

대형조선소 지급한 대금으로
협력사 임금지급 등 비용 충당
육상건설보다 턱없이 낮은 단가
임금체불·인력난·폐업 악순환

최근 문자가 왔다. "SK 청주, LG 파주 안전감시 13 부부가능, 배관철의장, 시스템 실링 보조 15, 준기공 16, 기공 18 숙식 제공, 7시 잔업시 0.5공수지급, 회사 직접 채용." 위에 적힌 숫자는 단위가 만 원이다.

현재 조선소에 다니는 노동자는 거의 준기공 혹은 기공임으로 16만 원, 18만 원 일당을 받는다는 것이고, 7시까지 잔업 2시간을 하면 일당의 50%를 가산해서 지급한다는 것이다.

▲ 충북 청주, 경기 파주 지역 대기업의 구인 문자.  /강인석 시민기자
▲ 충북 청주, 경기 파주 지역 대기업의 구인 문자. /강인석 시민기자

그렇다면 준기공, 기공의 경우 7시까지 일하면 24만 원, 27만 원의 일당을 받는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9시까지 잔업하면 '두 대가리'를 지급한다고 한다. 여기서 두 대가리는 2배로 지급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32만 원, 38만 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평택, 양산, 청주 등 전국 곳곳에서 유혹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놀랍게도 원청의 관리자가 모집하거나 권유를 한다는 말도 있다.

며칠 전 5월 지급된 도장노동자들의 급여가 200만 원 내외였다. 소위 육상으로 가면 1주일 금액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나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조선소 인력난을 해결하는 길은 조선소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에 있다고 말하지만, 원청과 정부는 쇠귀에 경 읽기다.

◇사람값 =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3월 8일 2021년 1조 7547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2~3년 저조한 수주로 매출이 급감했고, 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공사손실충당금(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는 손실을 미리 잡아놓은 것)을 1조 3000억 원 상당 반영했다고 한다.

있을 수 있는 일에 대비하는 것은 경영의 처지에서 보면 옳다.

그런데 경영의 입장에서는 자잿값은 고려 대상이지만 사람값(?)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이것이 대형조선소 인력난이 악순환을 거듭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경영의 눈에는 시름시름 앓으며 언제 눈을 감을지 모르는 노동자의 삶은 눈곱만큼의 베풂도, 나눔도 없다.

현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도장, 발판, 탑재 등 21개 업체가 합법적인 교섭을 하고 있으나 전부 결렬되었고, 업체 대표들이 일방적으로 임금인상을 했는데 도장 노동자들의 경우 지금까지 연차가 없었던 노동자들에게 연차휴가를 보장한다는 이유로 일당 1000원에서 2000원, 최저시급 300원을 인상하는 데 그쳤다.

아이들도 땅바닥에 던져버릴 100원짜리 3개, 1000원짜리 1~2장을 던져준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 이런 사정은 대우조선 사내협력업체 100여 개가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기성금'(旣成金·공사 중간에 공사가 진행된 만큼 계산하여 주는 돈)이다. 기성금은 원청이 하청업체에 공사를 이루어진 만큼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하청업체는 기성금을 받고 기업을 운영한다. 말이 기업 운영이지 전달자 역할만을 강요받아왔다.

일반적인 기업은 상품을 생산하고, 생산 물품을 판매해서 그 수익으로 운영한다.

그래서 때로는 이윤을 남기기도 하고, 적자를 낳기도 한다. 일반기업과는 달리 조선소 사내협력사로 불리는 하청업체는 원청에서 기성금을 받아 그 돈으로 경영을 한다.

기업주는 별도의 수입 혹은 투자를 통해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원청에서 지급받은 기성금만으로 경영한다. 기성금에는 업체 대표 포함 전체 노동자 임금, 작업복, 자재, 4대 보험료, 식대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업주는 이 기성금에서 이윤을 챙겨간다. 그러다 보니 저임금·인력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나 업체 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업체 대표가 되면 한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황금알을 낳기는커녕 업체 대표들도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다.

◇벼랑 끝 사내하청 = 2015년 12월 17일 현대중공업 한 하청업체 대표가 기성금 삭감으로 인한 정신적 압박으로, 2020년 11월 16일 거제 삼성중공업 재하도급 업체 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나 한목숨 살자고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김○○ 대표님도 아주 힘든 거 알고 있다. 우리 조선소 구조가 이렇다 하는 것도 알고 있다"라며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2022년 5월 2일 임금 체불과 4대 보험 료 체납으로 폐업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오전 6시 40분 원청 현대중공업 본관에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 업체 대표는 "부당한 경영지원금 산입을 원상 복귀하고 손실분을 보장하라"라며 시위를 벌이다 현대중공업 경비대에 20분 만에 강제로 끌려내려왔다.

▲ 지난 5월 임금 체불과 4대 보험 료 체납으로 폐업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원청 현대중공업 본관에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br><br>
▲ 지난 5월 임금 체불과 4대 보험 료 체납으로 폐업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원청 현대중공업 본관에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하청 노동자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지만 또 한편에서는 하청업체 대표들도 마찬가지 처지다.

물론 아직도 전근대적인 생각으로 노동자를 쥐어짜는 업체 대표도 상당수 있다.

지난날 대우조선해양은 사내하청업체 186개, 일감 1만 6681건에 대해 '하도급법 제3조 제1항'을 위반하여 153억 원 과징금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2022년 현재 많은 변화와 개선이 되었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들은 '앞으로 수주 호황기이니 기다려보자'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하청업체들이 폐업 승차권을 끊고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월 임금 체불과 4대 보험료 체납으로 폐업한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업체 대표가 원청 현대중공업 본관에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2022년 5월 12일 대우조선해양 도장업체 ㅈㅎ기업, 발판업체 ㅇㅇ산업이 폐업을 선언했다.

폐업으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는 곧 노동자의 몫이다. 고용승계와 체불임금 해결을 위한 분쟁이 또다시 발생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조선소는 이런 구조를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이제는 답할 차례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