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찾기 다섯 번째 작품
탄압받던 지역 농촌 현실 재연
목사 헌신·보도연맹 역사 알려

"빨갱이 색출 작업, 당장 진행하시오!"

임 대위가 지침 서류를 책상에 내던지며 빨갱이 색출을 지시한다. 극중 시대적 배경은 해방 후. 빨갱이를 잡아들이라는 임 대위 말에 친일 경찰 출신인 김병희와 그 부하들은 "서류에는 없지만 지독한 빨갱이가 하나 있다"며 김해 진영복음중등공민학교(현 한얼중학교) 설립자이자 목사인 '강성갑' 이름을 입에 올린다. 친일행적이라고는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는 강성갑은 느닷없이 빨갱이로 내몰려 군부대로 끌려간다.

지난 12~13일 김해 진영한빛도서관 공연장에서 막을 올린 <한 알의 밀알 강성갑>(이정유·김수희 연출)은 강성갑(1912~1950) 선생 일대기를 조명하는 연극이다.

지난해 11월 초연 후 다시 무대에 오른 작품으로, 초량교회와 진영교회 목사였던 강 선생이 중학교 설립 과정에서 겪은 일제 탄압을 풀어낸다. 글을 몰라 농토를 빼앗기고 도리어 거금을 물어낼 처지에 놓인 농민들, 아이들을 가르치려던 강성갑이 마땅한 이유 없이 빨갱이로 몰려 탄압받는 과정을 그린다.

연극은 인물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 축에는 해방 직후 피폐한 삶을 살아가던 김해 진영지역 농민들과 친일세력의 과거를, 또 다른 축에는 현재 농촌 문제를 번갈아 들려주며 폭력과 탄압으로 얼룩진 지역사를 조명한다.

"배워야 주인 노릇도 하고 새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며 주민을 다독이는 생전 강성갑 선생 모습이 작품 속에서 재연된다. 그 시대 지식인으로서 배움이 있어야 다시는 나라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농촌개혁을 주도하며, 친일파와 각을 세우는 모습이 극에서 다뤄진다.

▲ 극단 이루마 <한 알의 밀알 강성갑> 속 한 장면. /극단 이루마
▲ 극단 이루마 <한 알의 밀알 강성갑> 속 한 장면. /극단 이루마

강성갑 선생은 마산상고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지사대학으로 건너가 신학을 전공했다. 그는 1943년 졸업 이후 목사가 됐지만, 목회자로서 길만 고집하지 않았다. 배움을 강조하며 진영에 학교를 세워 농민과 아이들에게 글과 성냥 제조·목재·건축 기술 등을 가르쳤다. 숱한 수탈로 피폐해진 농민 삶, 식민지 통치 체제 이후 파탄지경에 이른 농촌사회, 땅을 잃고 유랑하는 농민들을 보며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실용적인 사람을 길러내겠다고 판단했다.

이번 연극은 강성갑 선생 전기 <한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저자 홍성표)를 바탕으로 극본이 만들어졌다. '김해 역사인물 찾기 시리즈'를 만들어온 이루마의 다섯 번째 연작이다.

지난 12일 공연을 관람한 전영재(32) 씨는 "강성갑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며 "탄압받는 과정에서도 농촌운동을 한 인물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이날 만난 또 다른 관객은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기 좋았고, 관객과 호흡하며 극을 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강성갑 선생 전기를 쓴 홍성표 연세대 객원교수도 13일 김해를 찾아 직접 연극을 관람했다. 홍 교수는 "이승만 정권 시절 민간인 학살 희생자인 강성갑 목사가 문화콘텐츠로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빨갱이가 아닌데도 빨갱이로 몰려 세상을 떠난 강 목사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 제작돼 감회가 남다르고, 특히 보도연맹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될 것"이라며 "역사 인식에 균형을 주는 작품이라 감명 깊게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한민국 미래를 바꿔보겠다고 생각한 이런 인물이 지역에 있었다는 건 대단한 것"이라며 "진영에 사는 분들이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고, 또 이 작품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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