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차별 일상인데 개인 문제 취급하나
여가부 없애도 젠더갈등 해결할 수 없어

정책과 공약 대신 비난과 혐오로 가득했던 대선이 끝난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대선 전 칼럼을 통해 이번 선거에서 젠더 이슈를 굳이 찾는다면 공약 같지 않은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일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철학이 없었기에 그 일곱 글자는 소위 '이대남'을 위한 상징적인 이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이 나고 인수위가 꾸려지면서 당선인은 "여성가족부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며 여가부 폐지를 공식화하였다. 이후 대선을 기점으로 끝난 줄 알았던 갈등과 혐오는 지속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여가부가 지나치게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페미니즘부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성가족부가 성평등이 아닌 갈등과 혐오를 조장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여성가족부 존재 이유와 기본적인 방향은 성평등한 사회실현이다. 그리고 성평등을 이론화한 것이 페미니즘이다. 결국 여성가족부는 페미니즘의 방향성과 다르지 않고 그것이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여성가족부는 페미니즘부이다', '성평등을 말하는 것이 젠더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은 역으로 우리 사회 성평등 인식이 여전히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성가족부가 여전히 존재해야 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당선인은 우리 사회에 더 이상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정말 없을까? 시대가 변하면 사회도 변하고 사회구성원 인식도 변화한다. 우리 사회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전에 비해 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고 구조적 성차별 또한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높고 유리천장 지수는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했던 여성들은 취업을 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발전한 디지털 기술은 n번방과 같은 범죄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수많은 여성이 디지털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목격했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등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들이 존재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고용이 불안정했던 여성들이 가장 먼저 해고되었고, 여성의 가사노동과 돌봄의 이중 부담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일상적 폭력과 차별에도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말한다면 수많은 여성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이러한 일들은 그저 개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인가?

여성가족부는 2001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모든 비판과 지적들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적 성평등을 위해 노력해온 수많은 성과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여성가족부를 젠더갈등 주체로 놓은 것은 지나치다. 젠더갈등은 청년세대가 느끼는 경제적 불안정과 지나친 경쟁,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분노가 여성에게 투사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4일 전 세계 115개 국제 시민단체는 이러한 우리 사회 안티페미니즘과 백래시에 대해 우려하며 여성가족부 폐지는 여성인권의 심각한 퇴행이라고 밝혔다.

당선인은 유난히 소통과 공정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으로 소통과 공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의 실현에만 집중하기보다 수많은 여성의 삶에 대해서도 깊이 통찰해 보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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