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민간인 희생자 유족 11명
진실화해위원회에 증언

"형님 두 분이 경찰에 끌려가고 나서 아버지가 수소문 끝에 행방을 알아냈다. 그날 밤에 온 가족이 형님이 있을 거라는 산 골짜기로 향했다. 매일 밤 총소리가 난다던 곳이었다. 골짜기에 다다르자 제멋대로 뒤엉킨 시체더미가 나타났다. 가족들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만큼 훼손된 시체를 닦아가며 겨우겨우 큰 형님을 찾았다. 작은 형님은 끝내 찾지 못했다."

72년 전 이야기다. 한국전쟁 전후로 수많은 민간인이 군과 경찰 등에 학살됐다. 경남에서도 국민보도연맹 사건, 산청 일대 주민 학살 사건 등 죄 없는 희생자들이 확인됐다.

세월이 흘렀지만 희생자 유족들은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로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위해 지난해 5월 2기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를 시작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1~25일 창원사무소에서 창원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족 11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이번 진술 청취는 창원 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유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추후 다른 유족들을 대상으로도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안임호(81·창원시 성산구) 씨는 한국전쟁이 시작되기 이틀 전인 1950년 6월 23일 큰 형과 작은 형을 잃었다. 평소처럼 가족들끼리 점심을 먹던 중 경찰이 집 안까지 들이닥쳤다. 다짜고짜 당시 28살, 17살이던 형들을 잡아갔다. 경찰은 형들을 트럭에 우겨넣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가 기억하는 형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안 씨는 "그 무렵 경찰들이 동네마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끌고 갔는데 그게 우리 가족이 될 줄은 몰랐다"며 "형들은 특별한 직업도 없었고 아버지 농사일을 도와주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형들이 그렇게 되고 어머니는 화병으로 병원 생활을 오래하시다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이령자(80·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8살 무렵 아버지를 잃었다. 이 씨 아버지는 창원에서 대형 공장을 운영했던 사업가였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이 씨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군인들과 함께 잠깐 나갔다 온다던 아버지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이후 괭이바다(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앞바다)에 수장됐을 거라는 소문이 유일한 단서였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온 가족이 풍비박산 났다"며 "다섯 형제는 친척 집으로 흩어져 비참하게 생활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가진 공장, 재산 등 전부 빼앗겼는데 집에 돈이 많아서 표적이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들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은 빨라도 1~2년은 더 걸릴 전망이다. 최종 결정이 나온 뒤에는 배·보상 문제도 남아 있다.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배·보상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이에 유족들은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 제정해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관련 조항을 만들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배·보상 문제가 진실규명과 별개로 되어 있다 보니 유족들이 소송을 직접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당장 정해진 건 없지만 배·보상 문제도 진실 규명과 함께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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