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정권 부정선거에 분노
시위 중 경찰 총탄에 숨진 10대
모교 마산고 정문 남쪽에 설치
유공 동문 10명 이름 함께 새겨

62년 전 마산고등학교 학생 신분으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와 독재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두 열사를 기리는 흉상이 제작됐다.

마산고등학교는 3.15의거 62주년을 맞은 15일 김영준·김용실 열사 흉상 제막식을 진행했다. 학교 정문 남쪽에 설치된 흉상 옆에는 열사 일대기를 적은 안내판을 세웠다. 바닥 돌에는 3.15의거 때 크게 다친 유공 동문 10명의 이름도 함께 새겼다.

마산고 19회 졸업생 김영준 열사는 3형제 막내로 3.15의거 며칠 전 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월남하여 서울에서 지내던 김 열사 가족은 6.25전쟁 때 마산까지 떠밀려왔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큰형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공대 진학을 희망할 만큼 꿈 많은 청년이었다.

해 질 무렵 의거에 참여해 부정선거 규탄을 외쳤던 김 열사는 마산합포구 장군동 다리 인근에서 경찰이 쏜 총에 하복부 관통상을 입었다. 이후 도립마산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열악한 의료 환경과 경찰의 수술 방해 등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고 결국 3일 뒤인 18일 세상을 떠났다.

김영준 열사 형수인 김옥주(85) 씨는 "당시 제대로 치료만 받았으면 살았을지도 모른다"며 "아마 이북 말투를 쓰다 보니 경찰 표적이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은 억울하게 아들을 잃었지만 빨갱이로 몰릴까 봐 큰 소리도 못 내고 살았다"며 "죄 없는 청년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돼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용실 열사는 3.15의거 당시 마산고 1학년 B반 급장이었다. 그는 중학교까지 계속 간부를 도맡을 만큼 또래를 이끄는 통솔력이 뛰어났다.

▲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숨진 마산고등학교 김영준(19회)·김용실(21회) 열사 흉상 제막식이 15일 오후 창원시 마산고등학교에서 열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숨진 마산고등학교 김영준(19회)·김용실(21회) 열사 흉상 제막식이 15일 오후 창원시 마산고등학교에서 열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3.15 부정선거가 있었던 날 그는 할머니의 투표권을 누군가 미리 행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 곧바로 친인척 집을 들러 작별 인사를 한 뒤 오후 7시께 의거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모습이 가족들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의거 현장으로 간 그는 밤 10시께 무학초등학교 앞에서 경찰이 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해 현장에서 숨을 거뒀고 도립마산병원에 안치됐다.

김용실 열사 동생 김태실 씨는 "3.15의거 당일 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형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형은 지금 자신을 찾을 게 아니라 부정부패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그게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병원에 안치돼 있던 형 시신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전단이 나왔다"며 "경찰이 꾸민 것이라는 게 나중에라도 밝혀져서 다행이지 당시에는 자유당 정권이 우리를 간첩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는 경황이 없어 장례도 제대로 못 치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열사와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 제갈선광(79·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용실이는 평소에도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며 "당시 부정선거 사실을 알고 나서 거리로 나갔던 이유도 그런 성격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마산고 박원철 총동창회장은 "꽃다운 젊음을 조국 민주화와 맞바꾼 두 분과 많은 유공 동문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연년세세 전하고자 추모 동산을 만들었다"며 "선배들의 올곧은 정신이 이어져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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