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규모 9.0 대지진은 일본 열도를 흔들어댔다. 바다는 높이 15m의 대형 쓰나미를 몰고 땅 위로 올라왔다. 지진으로 바다는 원전을 덮쳤고, 지진으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 방사능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방사능 물질은 땅과 물 곳곳에 스며들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진지 꼬박 11년이 흘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교훈삼아 핵발전 위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자는 요구가 경남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원전 육성을 강조한 윤석열 후보가 20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탈핵 운동이 원점으로 돌아갈 거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대체, 노후 원전 폐쇄, 탈원전 정책 등으로 원전 정책 변화를 이끌어 왔던 지난한 과정을 되짚어봤다.

◇밀양에서 불어온 탈핵 바람 = 송전탑 건설로 파괴된 삶의 터전을 지켜달라는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탈핵 운동에 힘을 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 밀양 지역에서 탈핵 운동이 활발하게 일었다. 고압 송전탑이 삶의 터전을 헤집는 건 '원전'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서다.

정수희 밀양송전탑대책위원회 집행위원은 "오랜 기간 송전탑 경로를 바꾸거나, 선로를 지중화하는 방법을 논의하면서도 해결이 안 되고 있었다"며 "밀양 주민들은 그 끝에 핵 발전소가 있고, 원전을 위해 대용량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2년 1월, 핵발전소확산반대 경남시민행동과 경남에너지시민연대는 밀양으로 향했다. 당시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에서는 한국전력 765㎸ 송전철탑 건설에 반대하던 주민 이치우 씨가 분신했다.

밀양에서는 에너지 산업의 위험성에 대한 목소리가 들끓었다. 이들은 정부가 대도시에서 무분별하게 전기를 낭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과 송전탑 등 위험한 에너지 생산은 지역에서 가져가면서 지역민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후쿠시마 원전 사고 11주년을 맞아 지역 환경단체가 지난 11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 후쿠시마 원전 사고 11주년을 맞아 지역 환경단체가 지난 11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신고리원전 5·6호기 증설을 반대하는 시민 1000여 명이 '탈핵희망버스'에 올랐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시민들은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생명의 나무를 심는가 하면, 고리원전본부 근처를 에워싸는 인간띠 잇기로 탈핵을 외쳤다.

원전 반대를 촉구했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탈핵 논의에 물꼬를 텄다. 지역 사회에서 탈핵이 화두가 됐다. 고리원전 1호기에서 사고가 난 만큼 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흐름이 이어졌다.

2012년 3월 9일 김종대 창원시의원은 고리원전 1호기 즉각 폐지와 원전확대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결의안을 지방의회 최초로 추진하기도 했다.

김 시의원은 원전 폐기물 처리 방안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 정책을 펼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으면서 우리 지역에서도 환경운동연합 중심으로 탈핵 운동이 일어났다"며 "우리 지방의회에서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란 판단에서 결의안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에 정책변화 불가피
원전 중단·감축 백지화 가능성
시민단체, 환경·기후위기 우려
'오염수 방류'저지 대책 등 촉구

 

◇끝나지 않는 후유증 = 후쿠시마 원전 후유증을 놓고 우려가 번졌다.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면서 먹거리까지 지장을 줄 거란 얘기다. 2013년 10월, 경남YWCA협의회, 경남환경운동연합 등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핵발전소 사고로 고통받는 후쿠시마 사람들이 밀양 주민과 만나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2014년 1월, 핵발전소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세계 탈핵은 후쿠시마로부터, 한국에서의 탈핵은 밀양으로부터 배운다는 말까지 나왔다.

2015년 3월, 지역 반핵단체가 '만민공동회'를 열어 방사능 비상계획구역 확대를 논의했다.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되면 방사능 누출 시 비상대책을 가동해야 한다. 지역 반핵단체는 원전 사고가 날 때를 대비해서라도 비상계획구역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2016년 3월, 탈핵경남시민행동이 경남도의 방사능 안전대책이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전과 방사능 대책 전담 인력을 확보하고, 관련 대책을 세우라고 주장했다. 그해 10월에는 경주 지진 여파가 원전 재앙으로 이어지리란 우려가 쏟아졌다. 동남권이 더는 원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안을 찾아서 = 2017년부터는 지역 여론이 윤곽을 드러냈다. 경남과 부산·울산에 사는 시민 46%가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중단 방침을 지지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57%가 원전을 놓고 위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권 교체와 함께 탈원전 정책이 급부상했다.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를 원전으로 대체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자 2018년 한살림경남은 다른 대안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2019년 들어서 정부는 친환경 미래 에너지와 탈원전으로 에너지 방향을 전환했다. 탈핵 운동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2020년 10월 27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하자 탈핵 운동에 위기감이 고조됐다. 지역 환경단체는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 방류 방침을 재고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2021년에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거란 예측이 이어졌다. 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의회, 수산업계와 어민들이 나서서 일본의 결정을 규탄했다. 2021년 4월에는 거제 지역 어업인들이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해상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임종만 일본방사능오염수방류저지경남행동(이하 방사능저지경남행동) 상임대표는 "한국 정부는 유감 표명에 그치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일본 방사능 오염수로 국민 먹거리가 위협받는데 정부가 문제 해결에 앞장서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일본 원전사고 11년 지났지만
방사능 유출 등 피해·고통 여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계기로
국내서도 에너지산업 위험 주목
탈핵·신재생 전환으로 이어져

 

◇원전 대통령의 탄생 = 탈핵 운동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2022년 3.9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원전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탈핵 운동이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윤 당선인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약속했다. 현재 가동되는 원전은 총 24기. 원래 계획대로라면 2030년까지 10기 원전이 가동을 중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원전 가동 중지 논의도 백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당선인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원전으로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역 환경단체는 1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우려를 표했다. 방사능저지경남행동은 윤 당선인을 향해 핵발전소 조기 폐쇄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소비 절약 대책 수립 등을 촉구했다.방사능저지경남행동은 "납품비리, 안전불감증, 테러, 지진, 산불, 태풍 등 핵발전소를 위협하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며 "핵발전소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커다란 위협"이라고 꼬집었다.

진주기후위기비상행동도 이날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란 주제로 1인시위를 진행했다.

진주비상행동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1만 5000여 명의 사망자, 2000여 명의 실종과 피난민 등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주었고, 그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130만t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를 2023년부터 30년에 걸쳐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피해가 클 우리나라와 중국 등 주변 국가와 국제사회가 이를 규탄하며 반대하고 있음에도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를 위한 시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을 향해서도 "대선 후보 질의답변에서 '방류결정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국민 안전 관련해서 철저할 필요'가 있고,'국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접근을 위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며 '국민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