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제작된 뮤지컬 명작
스티븐 스필버그 리메이크

레트로 열풍이다. 과거의 유물로 역사 속에 사라지리라 여겼던 LP가 최근 다시 음반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그 속에 내용을 담아내야 하는 가수들은 옛 음악을 추억이라는 서랍에서 다시금 꺼내어 새롭게 우리 앞에 내어주고 있다. 영화 산업도 마찬가지. 최근 개봉작만 보아도 너무도 참신한 세계관을 입어 지금 보아도 낡아 보이지 않는 영화 <메트릭스>, 7080 세대에겐 영화의 제목과 동시에 주제가가 읊조려질 <고스트 버스터즈> 등, 마치 20세기의 모든 유명 콘텐츠들을 다시 부활시킬 듯한 기세다. 이러한 추세는 상상력의 부재를 걱정하게 하고 천박한 상업적 추억팔이라는 비판을 일면 낳기도 한다. 하지만 명작을 새롭게 되새겨 볼 기회,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마법의 다리이기에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작업이 만만치는 않다. 기존의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새로운 연출에 낯섦이,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있어선 시대착오적 주제의 관념이 온전한 감상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뮤지컬이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유행에 민감한 음악을 중심으로 극의 흐름을 끌고 가야 하기에 그렇다.

이러한 과제를 안은 채,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숙원이었다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뮤지컬을 리메이크해 세상에 내어놓았다. 자신의 젊은 시절,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주었던 명작에 대한 헌사인 것이다.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장면.  /스틸컷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장면. /스틸컷

뉴욕 링컨 스퀘어 세력 다툼
빈민 청년-이민자 조직 사이
용납되지 않는 남녀의 사랑
청춘들의 열정·행복·분노
음악과 춤으로 감정 증폭

뉴욕 웨스트사이드의 링컨 스퀘어 지역, 빈민가인 이곳은 새로운 개발을 위한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무얼 얻으려는 것일까? 곧 아무것도 남지 않을 이 구역을 차지하려는 두 청년 조직 제트파와 샤크파. 그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된 청년들, 그리고 미국령(푸에르토리코)에서 꿈을 찾아왔건만 온전한 자국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민자들. 이렇듯 삶의 바닥, 위태로운 두 조직은 제트파의 리프 그리고 샤크파의 베르나르도가 이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 두 조직의 투닥거림이 벌어지고 곧 무도회가 열릴 예정이다. 화해와 평화를 원하는 선생님들과 경찰들을 뒤로 한 채 여기서 벌어진 또 다른 전쟁. 하지만 이곳에서의 전쟁은 댄스 배틀이며 그들의 멋들어진 춤사위에 그냥 그저 이렇게 승부를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시작된 운명적인 만남. 마리아와 토니가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 시간은 멈추었으며 온 세상엔 둘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마리아의 오빠이자 샤크파의 리더인 베르나르도에게 들켜버리자 또다시 살벌한 분위기. 리프는 이미 작정했던 전쟁을 선포, 하지만 정작 마리아와 토니는 발코니에서 만나 서로의 사랑이 시작된 운명의 '오늘밤(Tonight)'을 노래하며 영원을 약속한다. 와중 두 조직 간의 전쟁이 자신 때문이라며 괴로운 마리아는 토니에게 이 전쟁을 멈춰주길 부탁한다. 그녀의 부탁에 리프를 찾아간 토니, 한때 함께 조직을 이끌었으며 절친이기도 한 그의 충고를 들을 만도 하지만 리프는 그럴 생각이 없다. 단지 함께 싸우기만을 바랄 뿐. 마침내 시작된 두 조직 간의 최후의 결전, 비극의 시간이 다가온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대답할 수 있을까? 왜 이토록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는지,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폐허와 다를 바 없는 이곳을 장악하려 하는지. 미래가 없는 청춘들, 그들의 서글픈 분노가 쏟아내야 할 곳을 찾지 못해 애먼 곳을 향한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이야기를 품은 채 영화사에 남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 영화가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바탕으로 한 두 젊은 남녀의 비극적이고도 불꽃 같은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지만 장면을 수놓던 춤과 음악을 빼놓을 순 없다.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장면.  /스틸컷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장면. /스틸컷

'프롤로그'(Prologue) = 불안정한 음정의 짧은 피콜로 선율, 마치 패거리를 불러 모으려는 휘파람 소리 같은 위태로운 선율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면 한 무리의 청년이 하나씩 등장, 거리를 누빈다. 그리고 샤크파와 제트파의 충돌에 이어 경찰이 등장하기까지. 여기서 등장하는 음악은 오페라에서의 서주처럼 전반을 아우르며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특히 1961년 작에서의 프롤로그 시퀀스는 다양한 패러디를 불러온 명장면이다.

Something's Coming = 발렌티노의 가게, 무도회에 오라는 리프의 부탁을 거절한 토니는 운명적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노래한다. 희망을 노래하지만 다가올 비극을 예고하듯 왠지 불안하다.

The Dance at the Gym = 체육관에서의 댄스 배틀. 블루스, 맘보, 그리고 차차까지. 춤으로 발현된 젊음의 열정이 무대에 가득하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결에 당시를 유행하던 춤들이 휘돌고 신명의 음악이 공간을 채운다. 60, 그리고 7080세대에게는 분명 기시감이 있을 것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마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장면. 그렇게 세대 간의 젊음이 이어진다.

Maria = 내 삶 속 존재했던 모든 언어들 중 가장 아름다운 사운드, 마리아. 어쩌면 음악 같고 조용히 읊조린다면 기도처럼 숭고한 그녀의 이름. 무도회에서 처음 만나 어쩌다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이 한 젊은 청년의 가슴에 들어온, 그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의 순간이 노래가 되어 흐른다.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장면.  /스틸컷
▲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장면. /스틸컷

Tonight =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된 <로미오와 줄리엣>, 이 이야기를 연출하는 감독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장면이라면 아마도 그들의 첫 대면일 것이다. 한눈에 서로의 운명을 알아보는, 비록 짧은 순간임에도 가슴 절절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더불어 발코니 장면. 자신의 사랑을 절절히 고백하는 순간의 떨림과 간절함, 그 사랑을 확인했을 때의 벅차오르는 감정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스코어와 함께 재현된다. 몇 번이고 토니를 돌려세우는 마리아, '저렇게나 좋을까?'

America =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처녀들과 이를 비꼬는 청년들.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헛된 바람일 뿐인가. 서로가 정열적인 춤을 주고받지만 깊숙이 자리한 그들의 체념이 안쓰럽다.

I Feel Pretty = 비극이 시작된 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마리아는 세상의 주인인 듯 행복할 뿐이다. 주위의 동료들은 영문을 몰라 '쟤가 왜 저러나' 하고 마리아는 날아오를 듯한 감정을 장면 속 노래에 담지만 일어난 일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그런 모습이 철없어 보이면서도 안타깝다.

Somewhere = 비극의 소식을 전해 들은 발렌티노, 감옥을 나와 새 인생을 꿈꾸는 토니를 따뜻이 보살피던 그녀가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마치 한숨처럼 들려오는 노래, '그들의 사랑이 편안히 머물 곳은 없는가'. 1961년 작에서 마리아와 토니가 자신들의 처지를 부둥켜 한탄하며 불렀던 곡이 이번 리메이크에선 그녀의 입을 통해 흐른다 '리타 모레노', '아니타' 역을 맡아 멋들어진 춤사위로 1962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휩쓸었었다. 그런 그녀가 발렌티노 역을 맡아 이번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감동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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