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가족 모임·차례 지내기 옛말
정치·선거 대신 사는 이야기 채운 밥상

"내년부터 명절 차례를 안 지내기로 했으니 연휴 때 애들이랑 놀러도 다니렴."

두 며느리와 자식들을 불러 앉힌 어머니는 내년부터는 명절 차례상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자신이 모시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 우리 집에서 명절 차례를 지내지 말자는 이야기가 오간 지는 몇 년이 흘렀다.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시누이들이 차례를 없애자고 몇 번이고 권유했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 생전에는 지내야 한다고 철칙을 고수했다.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이런 명분이 사라졌고, 결국 우리 집도 명절 차례 없애기에 동참하게 됐다.

명절 차례 대신 호텔이나 펜션에서 가족들과 명절을 지내는 지인이 주위에 많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 형제간 6남매 일가 친척이 한데 모여 유년 시절부터 시끌벅적한 명절을 보낸 나로선 살짝 아쉬움도 남는다.

어린 시절 명절은 왕래가 뜸했던 사촌 동생들과 놀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맛있는 음식에다 풍성한 용돈까지 더해져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설과 추석 1년에 딱 두 번 우리에게 허락되는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이야기꽃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조촐한 명절이 일상이 되고 있다. 우리 집도 그랬다. 보건당국의 강화된 방역수칙을 따르느라 지난해 추석 아내는 친정에서, 나는 본가에서 따로 명절을 보내기도 했다.

한때는 30명이 넘는 가족이 모여 신발로만 마당 절반을 채운 적도 있지만, 올해는 직계가족만 모였고, 그만큼 음식 가짓수도 줄었다.

통상적으로 선거를 목전에 둔 '명절 민심'도 올해만큼은 달랐다.

대통령 선거라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예전 같았으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지지 후보를 대변하는 상황이 연출됐겠지만, 사람이 모이질 않다 보니 갈등을 예고하는 주제는 아예 설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예고됐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양자토론마저 무산되며 설 밥상에서 '정치'는 아예 사라졌다.

그 자리는 먹고사는 이야기가 대체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과 조카를 두고 어릴 적 학창시절을 떠올렸고, 세뱃돈을 받아 어디에 썼는지 과거 기억을 소환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돼 가족들끼리 왕래도 하고, 내년 명절 연휴를 활용해 국외 여행을 가보자는 희망 섞인 바람으로 설 연휴를 마무리했다.

이제 다시 일상이다. 올해는 담담하게 지내자고 다짐 중이다.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담담함이 주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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