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도정 거치며 조직 와해
현재 유명무실 민간기구 전락
도내 영화인들 인재 유출 우려
"전문인력이 이끄는 기관 절실"
조례안 실행·육성위 조직 시급

경남지역에는 영화산업을 견인하는 기관이 없다. 영상위원회를 중심으로 영화산업이 커가는 서울·경기·강원·충청·전라·제주 등 전국 다른 광역·기초자치단체와 달리, 경남에서는 영상위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1월 창원시 마산체육관에 사무실을 두고 공식 출범한 경남영상위원회(이하 경남영상위)는 홍준표 도정을 거치면서 조직이 와해됐다. 위원장을 제외하고 현재 경남영상위에서 일하는 직원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사무실 월세 내기에도 빠듯한 게 경남영상위 현주소다.

경남도가 2013년 경남문화재단·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경남영상위원회 등 문화예술 관련 출자·출연기관 3곳을 통폐합하기로 하자, 경남영상위는 이에 반발해 이사회를 거쳐 통폐합 거부 뜻을 모았다. 예산 절감과 업무 중복 등 비효율성 개선을 앞세워 통폐합을 추진한 홍준표 도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도는 경남영상위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경남영상위는 도 방침인 '해산 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통합'을 거부하고 자율적 민간기구로 남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표류하다 2013년 활동을 중단했다.

홍 전 지사가 경남을 떠난 지 5년 가까이 지났지만, 통폐합에서 비롯된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경수 전 지사와 하병필 권한대행을 거치면서 경남영상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단법인 형태로 이름만 남겨둔 상태다. 영화인 지원은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콘텐츠진흥팀이 대신하며, 약 2년 주기로 교체되는 공무원들이 담당하고 있다. 영화 현장에서 뛰어봤거나 영화 관련 전공자는 없다. 지역 영화인 사이에서 전문 인력이 행정을 담당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최정민 영화감독은 "영화 현장을 아는 전문직 또는 전공자 출신들이라면 영화인이 처한 상황과 현실적 문제를 잘 이해하고 정책을 펼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남영상위를 다시 꾸리거나 진흥원 산하 영상지원센터를 새로 만든 뒤 전문인력이 행정을 맡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그래야 영화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4~5년 동안 지자체가 여는 포럼·간담회 등에 매년 참석해왔는데 진흥원장이나 담당자들에게 여러 요구를 해도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면서 "지난해 김록경 감독이 영화 <잔칫날>로 상을 받는 등 성과를 냈는데도 오히려 올해 예산은 줄어버렸다. 영상위를 중심으로 지원을 많이 해주는 서울·경기·강원·충청·부산 등으로 지역 인재들이 많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재현 영화감독은 현실적으로 경남영상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점을 들어 새로운 영화기관을 만들어 영상 분야 지원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박 감독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긴 하나 경남영상위라는 법인격은 살아있는 상태"라며 "사단법인으로 돼 있는 이곳이 계속 남아있는 한 같은 이름으로 새 기구를 만들기는 어렵다. 다른 지역처럼 영상위 중심으로 운영·지원하는 방식이 어렵다면 진흥원 산하에 독립적인 기관을 세워서 지원해 나가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 2010년 1월 22일 경남영상위원회 현판식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 2010년 1월 22일 경남영상위원회 현판식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지역 영화계 지원을 위해 먼저 '경상남도 영상산업 육성 조례안'이 기존 안대로 실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조례는 도지사가 영상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고, 영상 산업 육성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영상 제작과 촬영 시설 확충·운영, 영상산업 관련 전문인력 양성·특화사업 추진 등이 담겨 있다. 경남도 영상산업육성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아직 위원회는 꾸려지지 않았다.

김민재 미디어센터내일 대표(영화 기획자)는 "조례안이 실행되는 게 먼저"라며 "그래야 경남의 영상 문화 향유 기회와 영상산업 청사진이 나오고, 이를 현실화할 예산 증액 규모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상산업육성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서 산업으로서의, 공공예술로서의 영화·영상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특정 영화인 혹은 영화단체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예산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전체 틀을 논의하고 협의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우태 진흥원 콘텐츠진흥팀장은 경남도에 예산 증액을 계속 요청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경남영상위를 새로 만들거나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가려면 도지사 의지가 중요한데, 도정 공백을 겪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팀장은 "진흥원은 도 산하 기관이다. 도 예산 편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보다 영상 분야 예산이 더 늘어나도록 도에 계속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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