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에는 주의 기울이지 않는 뇌
새로운 경험·관점은 경험의 밀도 높여줘

최근 보편화되고 있는 전기 자동차의 핵심 부품은 배터리다. 단위 부피 또는 단위 무게당 에너지 양으로 표현되는 에너지 밀도는 배터리나 연료의 효율을 비교하는 지표다. 에너지 밀도가 높으면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부피가 작거나 무게를 적게 만들 수 있다. 19세기 초 개발되기 시작한 전기 자동차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낮아 100년 이상 석유라는 압도적인 성능의 연료를 이용하는 내연기관차에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급부상한 환경 문제로 다시 주목받게 되면서 2003년 설립된 테슬라를 필두로 자동차 시장을 급격하게 잠식해 나가고 있다.

현재 전기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부피 기준으로 700Wh/L 가량이라고 한다. 석유의 에너지 밀도(1만Wh/L)에 비해 매우 낮아 보이지만, 내연 엔진을 구동하는 과정에서의 에너지 손실을 고려하면 경쟁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질량을 기준으로 한 석유의 에너지 밀도도 1만 3000Wh/㎏으로 리튬 이온 배터리 에너지 밀도(300Wh/㎏)에 비해 월등히 높아 보이지만, 에너지 손실을 고려할 경우 1700Wh/㎏가량으로 차이는 많이 줄어든다.

최근 KAIST 연구팀은 고무처럼 신축성이 탁월한 고분자 고체 전해질을 이용해 410Wh/㎏ 이상의 에너지 밀도를 달성했다고 학술지에 보고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얼마 전 배터리 제조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이 역대 최대의 공모주 청약 열풍을 일으킨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떤 물리량을 비교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정규화를 수행한다. 단위 질량이나 길이, 면적, 부피 등으로 정규화한 각종 밀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리량은 아닐지라도 주택의 평당 가격도 같은 맥락에서 '가격의 밀도'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아인슈타인 이래로 시간은 4차원 시공간의 한 축으로 포섭되었다. 따라서 단위 시간당 포함된 총량으로 표현되는 어떤 값이라도 밀도 범주에 포함할 수 있겠다. 심리학자들은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험의 밀도'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의 뇌는 흥미롭거나 새로운 일은 오랫동안 기억하지만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한다고 한다. 컴퓨터의 파일 압축처럼 시공간적으로 중복되고 중요하지 않은 자료는 제거되더라도 감지할 수 없으므로 생략된다. 처음 무언가를 배울 때는 복잡한 절차와 긴 수련 과정을 개별적 경험으로 생생하게 간직하게 되지만, 시간이 흘러 경험이 반복될수록 익숙한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동일한 물리적 시간에 축적되는 심상(마음속 그림)이나 기억에 해당하는 '경험의 밀도'가 낮아져, 별로 한 일 없이 시간만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의미다.

이제 곧 설이고, 모두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 생물학적 이력에 한 줄을 더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 내리막에 들어섰기에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은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라도 어린 아이처럼 낯설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보자. 다채로운 경험과 집중이 만드는 생생한 기억은 촘촘하게 이어져 '경험의 밀도'를 높여줄 것이다. 기름이 물 위에 떠다니는 이유는 물보다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이 시간의 흐름 속에 헛되이 부유하지 않도록 다양한 경험과 신선한 관점으로 삶의 밀도를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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