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어디 심나 지도 그리는 시간
친구들도 가슴 뛰는 한 해 되기를

사람들을 만나면 새해 인사를 나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이지만, 농부에게 1월은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나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을 갈무리하고 이제 쉬어 가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궁둥이 꾹 붙이고 앉아 나무 숟가락을 깎았다. 뭉툭했던 나무가 조금씩 깎여 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맵시가 났다. 숟가락 깎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니다. 혼자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여러 번 실수한 덕에 꽤 쓸 만한 숟가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꺼번에 많이 깎아 내려고 힘을 주다가 나무 이가 나가기도 하고, 잘 해 보려는 마음이 앞서 깎고 또 깎다가 구멍이 뚫린 일도 있다. 조금씩, 알맞은 만큼 깎아 내는 일은 나무로 무언가 깎을 때마다 하는 연습이다. 숟가락을 깎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 있다. 온전히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좋다. 나는 그렇게 쉬어 가고 있다.

바쁜 일로 하루하루가 가득 차 있을 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어떤 일을 함께해 보자는 제안도 거절하기 바빴다. 사람들은 새해를 계획하는데, 나는 '내가 새해에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나 보다. '쉼'이라는 틈새로 잊고 있던 하고 싶은 일들이 빠끔 고개를 내밀었다. 그 일들을 떠올리고, 상상할 때면 기분이 좋다.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이 다시 나를 찾아와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 마음을 마주하며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알맞은 정도를 잘 지켜보겠다는 마음도 함께 가다듬어 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해 내려 하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알맞은 힘을 들이는 연습이 삶에서도 필요하다.

여유가 생기니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밭 지도도 그린다. 봄이 오기 전에 공부하며 충분히 고민해야 하는 일인데 시간이 나지 않아 계속 미루고만 있었다. 무엇과 무엇을 함께 심으면 좋은지, 어떤 작물을 돌려짓기할지, 어떻게 구역을 나누어 농사지어야 안정된 농장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다양한 경험이 담긴 책을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고민하고 있다. 무얼 어디 심을까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는 시간이 즐겁다. 나는 봄이 오면 다시 씨앗을 뿌릴 수 있겠구나 싶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다 보니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생겨난다. '이래서 내가 그렇게나 바빴지' 싶다. 생각한 일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올해 놓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지난해 가까운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힘을 모아 양파잼을 만들었다. 마침 우리 집 양파 농사가 넉넉하게 되어 재료 걱정 없이 할 수 있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호흡을 맞추어 일을 잘 해냈다. 올해는 우리가 농사를 지어 양파잼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모두 좋다고 했고, 지난 가을에 친구들과 함께 양파를 심었다. 겨울이라 특별히 해 줄 것이 없는데도 친구는 이따금 양파 안부를 묻는다.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밭에 들러 양파를 살핀다. '무언가 함께 한다는 건 이렇게 마음이 모이는 일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올해는 친구들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만들어 보고 싶다. 양파잼뿐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 만들어 판매해 볼 수 있는 작물을 함께 농사지어 보자 제안해 볼 참이다. 같이 농사지을 땅도 생각해 두었다. 그 제안을 하려고 이번 주말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친구들에게도 가슴 뛰는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에게도 새해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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