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기술 저변 가장 탄탄한 경남
그 역량 토대로 산업 전환 준비를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미래 산업 각축장이라 불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개최된다. 올해 행사에서도 미래 모빌리티, 메타버스, 푸드테크 등 세계 트렌드를 이끄는 다양한 혁신적 아이디어와 제품이 전시됐다. 이 중 필자의 관심을 끈 건 '헬스케어 산업' 부상이었다. 수면의 질을 관리해주는 스마트 침대,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스마트 변기, 호흡을 분석해 최적의 운동 효과를 유도하는 휴대형 기기 등 새로운 혁신 기술이 현장에서 속속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보스포럼은 지난해 말 '2021년 10대 기술'을 선정해 발표했다.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혁신적인 기술로 인류 삶을 개선하고 변화시키는 대표적 기술 10개 중, 4개 기술이 헬스케어 기술이다. 입김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 개인 맞춤형 제작 의약품, 건강수명을 늘리는 오믹스 기술, 비접촉식 의료 장비이다.

헬스케어 산업은 의학과 공학의 기술 간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영역이다. 다양한 의공학 기술 개발로 의료 서비스 패러다임은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머지않아 개인 유전자 정보, 식단, 운동 습관, 환경 등 외부요인까지 통합 분석해 질병 발생을 예방하는 스마트 정밀의료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헬스케어 산업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창안하려면 무엇보다 임상경험이 풍부하고 환자 불편을 잘 이해하는 의료전문가와 과학기술인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공학적 사고능력을 갖춘 의사과학자의 체계적 양성이 매우 더디다. 오히려 공학 전공자의 헬스케어 분야 진출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게 아닌가 싶다. 몸속 혈류는 유체역학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근골격계 작동은 기계공학을 기초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 공대와 텍사스 A&M대학은 공학에 기반을 둔 의대를 별도 설립해 공학 전공 학생이 의학을 배우도록 하는 통합교육 과정을 운영 중이다. 학생들이 개발한 코로나19 진단키트나 만성신부전 모니터링 기술 등은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도 재료공학, 기계공학 등 전통 공학 분야에서 의료 및 헬스케어 분야 응용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사업 전환을 의미하는 용어로 농구나 핸드볼 같은 구기 종목에서 주로 사용되는 '피보팅(Pivoting)'이란 단어가 자주 회자된다. 기존 강점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 변화에 맞게 비즈니스 모델 및 전략을 바꾸는 것이다. 유튜브, 트위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바로 사업 초기 모델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 큰 성공을 거둔 케이스라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CES에서 주력 상품인 자동차는 단 한 대도 전시하지 않고, 오직 '메타버스'와 '로봇'기술만을 내놓았다고 한다.

경남은 우리나라 기계산업 중심지이다. 공학기술 저변이 가장 탄탄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참에 경남이 가진 역량을 미래 산업인 헬스케어 분야로 피보팅해보면 어떨까. 코로나19로 일반인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기기에 대한 혁신 기술 수요가 만개한 상황은 분명히 경남의 제조 산업에 호기로 작용할 것이다. 수술용 로봇이나 3D프린팅 의료기기, 의료영상 AI 판독기기, 암 진단키트 등 의·생명 산업 기회가 열려있다. 이제 지역 제조 산업 또한 수요와 산업 트렌드 변화에 맞춰 전환 시기를 준비해야 할 때다. 경남의 대학과 연구기관, 병원과 기업, 지자체가 다 함께 힘을 모아 헬스케어 산업으로 과감한 피보팅을 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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