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도 도시도 무엇보다 강력한 공공재
권위적 관공서·이기적 아파트, 윤리는?

정의로운 도시. 생소할지 모르나 어려운 말은 아니다.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가 정의니만큼 그런 도시가 정의로운 도시다. 성장의 시대 동안 우리 도시는 키우고 짓느라고 앞만 바라보고 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다함께 행복한 도시, 도시 모든 것이 시민 누구에게나 차이 없이 공유되는 도시, 그런 도시를 꿈꿀 때가 되었다. 선진국이라지 않는가.

21세기 벽두에 열린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표제는 '덜 미학적인, 더 윤리적인(Less Aesthetics, More Ethics)'이었다. 완결된 형태를 미학의 완성으로 보았던 서양건축이 윤리를 주제로 삼았다. 회고와 성찰의 결과였고 시대정신의 표현이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따르거나 지켜야 할 도리가 인간 윤리이듯 건축이 마땅히 따르거나 지켜야 할 도리, 즉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과 형태를 취하면서도 전체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건축의 윤리다.

건축은 공공재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건축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소유한 건물이라 하더라도 건축은 그 속성상 공공재일 수밖에 없다. 어느 땅에 누구 돈으로 짓더라도 그렇다. 재산으로서의 건축은 사유화할 수 있지만 건축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유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유지에 세워지는 건축도 크게 보면 지구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건축은 태생적으로 공공적이다. 물, 에너지, 통신 등 공공에서 만들어진 자원이 없으면 건축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건축의 윤리성을 말하는 까닭도 그것이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안전문제를 생각해보면 더 실감할 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건물주는 '내 건물'임을 강조하며 무리한 설계변경을 강행했지만 정작 붕괴된 잔해 속에서 사상 당한 이는 1500명의 시민이었다.

건축이 이럴진대 도시는 말할 것도 없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것보다 강력한 공공재이다. 그만큼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로와 광장, 하천과 공원, 건축물의 경관과 밀도, 물과 공기, 일조와 조망과 소음까지, 도시환경 어느 것 하나 공공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만큼 공공성이 낮은 도시는 결국 시민 삶의 질을 떨어지게 한다. 경제성장도 될 만큼 되었고, 국민 9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제는 공공재로서의 윤리적 도시를 고민해야 한다.

반윤리적인 대표적 사례는 해안에 높게 지은 아파트이다. 자신들이야 전망 좋고 바닷바람도 시원하겠지만, 그 뒤에 붙은 수많은 낮은 집 사람들에게서 바다 풍광과 선선한 바람을 탈취해 버렸다. 더운 날 선풍기 앞에 딱 붙어 자신만 바람을 쐬는 꼴이며, 공연장 맨 앞자리에서 뒷사람 생각 않고 일어서서 구경하는 꼴이다. 가장 피해야 할 해악이지만 우리 도시는 무덤덤하다. 그뿐 아니다. 권위적인 관공서, 나홀로 아파트, 부조화된 빌딩과 뻔뻔한 간판 등 도시건축의 윤리성을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도처에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회에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시민의 연대의식을 들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는 공립학교가 있는 도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공립헬스클럽이 있는 도시, 상류층 통근자들도 타고 싶어 하는 대중교통이 있는 도시, 사람들을 집에서 끌어내 운동장, 공원, 도서관, 박물관 등 시민들이 공유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도시'를 말했다. 그런 도시가 정의롭다는 의미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의 도시는 정의로운가?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