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봉토분 122기 석곽묘 326기
창녕 지역 고분 중 분포도 최고
교동·송현동과 축조기법 유사
당시 하위 집단 묘역 역할 추정

"저 위까지 올라가야 해요. '땀 좀 흘리겠는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웃음)"

지난 13일 오전 10시 40분께 오재진 경남연구원 조사연구위원이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상월마을 안쪽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면서 한 말이다. 오 위원은 창녕박물관에서 마을로 오는 7분 남짓한 시간 동안 조수석에 앉아있던 기자에게 "여기는 걸어서 조금 올라가야 한다"라는 말을 세 차례 반복했다. 그가 가리킨 장소는 지역 비지정문화재 가운데 하나인 창녕 우천리고분군. 1984년 1월 11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화왕산에 고루 분포하는 가야유적이다.

▲ 창녕 우천리고분군 발굴조사 당시 모습. 우천리고분군은 작은 석곽 위주로 구성돼 규모가 상당하다. /경남연구원
▲ 창녕 우천리고분군 발굴조사 당시 모습. 우천리고분군은 작은 석곽 위주로 구성돼 규모가 상당하다. /경남연구원

마을과 점점 멀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산기슭 진입로에 이르렀다. 옹기종기 집이 모인 마을 풍경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 한 명 없는 산속이었다. 차로 오르기 힘든 길이어서 이때부터는 걸어서 산을 탔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배효원·백지현 창녕군청 학예연구사도 함께했다.

네 명이 함께 산을 탄 지 5분가량 지났을 무렵, 안지곡저수지가 나왔다. 오 위원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안지곡저수지 주변 산 경계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사면 쪽이 전부 고분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꼭대기는 봉토분 밀집 지역이고, 앞쪽은 석곽묘가 대거 모여 있는 곳이에요." 산 일대가 고분 밀집지역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말이 피부로 와 닿은 건 5분가량 산을 더 올라간 뒤였다. 나무에 초록색 띠가 부착된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눈으로 훑기에는 수가 많아 헤아리기 어려웠다. 차를 타고 오면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천리고분군은 작은 석곽 위주로 구성돼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오 위원이 주변에 초록색 띠가 450개가량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분 수를 확인한 뒤 위치를 표시해놨다는 얘기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그가 안내한 또 다른 장소는 경사가 더 높았다. 5~6분 더 걸어 인근 사면으로 가야 했다. 자리를 옮겨보니 볼록하게 솟은 고분 윤곽과 도굴 흔적이 여럿 드러났다. 고분 주변은 낙엽으로 뒤덮여 일반 야산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고분 위에 나무가 솟은 모습, 도굴 여파로 땅이 움푹 파인 풍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 지난 13일 찾은 우천리고분군. 도굴 여파로 땅이 움푹 파여있다.  /최석환 기자
▲ 지난 13일 찾은 우천리고분군. 도굴 여파로 땅이 움푹 파여있다. /최석환 기자

오 위원이 지난해 여름 자신이 참여했던 우천리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여름에 왔을 때도 육안상 고분이 잘 보일 만큼 수풀이 덜 우거져 있었어요. 여기서 보면 볼록볼록한 것들이 보이잖아요. 다 고분이에요. 밑에 갔던 곳은 석곽묘와 봉토분이 공존하는 지역이고, 여기는 봉토분만 밀집하는 구역이에요. 창녕지역 중심고분군인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최하위집단 묘역이 이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죠. 축조기법이나 형태가 매우 유사한데 하위 집단 묘역으로 이 고분군이 그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판단돼요."

우천리고분군은 화왕산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남동쪽 구릉에 자리한다. 고분군은 임야에 분포한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근현대 묘지가 다수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2020년 시행한 정밀지표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형 봉토분 122기와 석곽묘 326기 등 총 448기 고분이 확인됐다. 이는 창녕군에서 가장 많은 고분 분포도다. 지난해 진행된 경남연구원 발굴조사 과정에서는 꺾쇠·철촉 등 금속류 36점과 통영기대·고배 등 토기류 65점을 합해 유물 101점이 출토됐다.

고분군 조성 시기는 5세기 중반에서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직경 10~15m 정도로 중소형분이 대부분이다. 화왕산 북동사면 말단부에 있는 창녕 중심 고분군인 교동과 송현동고분군과 같은 무렵 조영된 것으로 추정돼 양 집단 간 관계가 주목된다. 두 고분군은 4㎞ 남짓한 거리를 두고 만들어졌다. 상위 집단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 하위 집단은 우천리고분군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 창녕은 2020~2021년 조사를 거쳐 전국 최초로 관내(26개소) 전체 고분군 정밀지표조사를 마무리했다.  /경남연구원
▲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 창녕은 2020~2021년 조사를 거쳐 전국 최초로 관내(26개소) 전체 고분군 정밀지표조사를 마무리했다. /경남연구원

우천리고분군은 여느 가야고분군과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도굴이 이뤄졌다. 상월마을 주민들은 과거 도굴꾼이 몰려와서 유물을 빼가는 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집집마다 산에서 굴러다니는 토기를 주워가지 않은 집이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이 직접 땅을 파서 도굴한 게 아니라 땅 위로 자연스레 드러난 걸 집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노기철(65) 상월마을 이장은 "창녕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토기와 똑같은 것들이 산에서 굴러다닐 때가 있었다"며 "비가 오면 마을 쪽으로 내려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토기를 주워 집에 가져가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굴꾼들이 과거에 유물을 도굴해 가서 난리 난 적이 있었어도 마을 사람들이 토기를 판 적은 없었다"며 "어렸을 때 문화재 조사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벌금 매기겠다고 한 뒤로는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토기를 산에 버리거나 깨서 밖에 버리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노헌열(67) 씨는 과거 토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집이 마을에 한 집도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 오래된 물건을 갖고 있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난 토기를 집으로 가져가서 작은 토기는 주민들이 막걸리잔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며 "1960년대는 문화재에 관심도 없던 때다. 마을 주민이 20여 명 되는데 지금은 대부분 문화재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문화재 지정 여부는 마을 사람들과 논의해서 결정돼야 할 일"이라고 했다.

오 위원은 우천리고분군이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큰 곳이라고 설명했다. 비지정문화재인 만큼 경남도 기념물로 먼저 지정한 뒤 추후 사적으로 만드는 방향으로 가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오 위원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하고 같은 산자락에 우천리고분군이 있는 형태인데, 이는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라며 "상당한 거리를 두고 계층을 나눠 무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층과 하층으로 집단을 구분해 4㎞ 거리를 두고 무덤을 만들었다.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해나갈 가치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배효원 창녕군 학예연구사는 "내년 군 예산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한 뒤 문화재 지정 관련 작업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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