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손발을 쓸 수 없었으며, 휠체어로만 이동했다. 우리는 어쩌다 인연이 닿아 함께 같은 공간에 있었다. 일행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둘만 남겨졌다.

그가 날 불렀을 때 내가 내뱉은 첫 마디는 "도와드릴까요?"였다. 그가 날 부른 이유는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를 도움을 줘야만 하는 상대로만 여겼던 건 아닐까. 잠시나마 그를 연민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스스로를 오래도록 부끄러워하고 있다.

장애인, 성소수자, 미혼모 등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그럴 때면 내가 겪었던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확장해 이해해보려 한다. 쉽지 않다. 물론 경험했다고 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며,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간극은 배움으로도 좁힐 수 있다. 타인에게 닿으려면 경험과 배움 모두 필요하다.

얼마 전 경남 기초 지자체 내부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성고충심의위원회를 취재했다. 성고충심의위원회를 구성한 17개 시도 지자체 가운데 61.1%(11곳)는 남성위원이 과반이었다. 외부 전문가 2명 이상을 구성에 포함해야 하지만 이를 지킨 지자체는 6곳에 불과했다. 지자체 9곳은 일부 심의위원이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이수하지 않거나, 교육 이수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성폭력은 위계에 의해 일어나고, 가해자 대부분은 남성이다. 남성 공무원 중심으로 기울어진 성고충심의위원회는 피해자 경험을 공유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배움도 없다. 전문가 구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데다 교육 이수 여부도 확인이 안 되고 있다. 경험도, 배움도 없는 성고충심의위원회는 피해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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