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자세·말조심·유비무환 강조한
노사 기정진 선생 가르침에 나를 돌아봐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새해에 제자들에게 세배를 받으시고 세상을 잘 살아갈 비결 하나를 선현의 시 한 편을 빌려서 소개하고 있다.

"처세에는 유한 것이 제일 귀하고(處世柔爲貴) 강강함은 재앙의 근본이니라(剛强是禍基). 말하기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發言常欲訥)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臨事當如痴).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急地尙思緩) 편안할 때 위태할 것 잊지 말아라(安時不忘危). 일생을 이 글대로 살아간다면(一生從此計) 그 사람이 참으로 대장부니라(眞個好男兒)" 한 글이요, 그 글 끝에 한 귀를 더 쓰시니 "이대로 행하는 이는 늘 안락하리라(右知而行之者常安樂)".

이 말씀은 대종경 인도품 34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원불교 교도들은 새해가 되면 즐겨 마음에 새겨보는 글이다.

조선 후기 주자학자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 선생의 시이다.

유한 것이 처세에 제일 귀하고 강강함은 도리어 화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두꺼운 외투를 벗게 하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살이다.

딸과 사위가 외손주 손녀를 데리고 인사차 서울에서 내려왔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나이인데 장난감을 가지고 왔다. 119가 새겨진 빨간색 헬리콥터와 파란색 경찰 헬리콥터가 있는데 각자 자기 것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빨강 헬리콥터를 가지고 놀고 싶어 달라고 하는 오빠에게 여동생은 자기 물건이다 주장하며 주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아이엄마 딸이 와서 중재를 시작한다. 잠깐 빌려주는 것이며 그 대신 오빠의 경찰 헬리콥터를 가지고 놀게 한다는 설명에 웃으며 오빠에게 장난감을 건넨다. 설명이 필요 없이 어른 한 말씀이면 싫어도 오빠에게 장난감을 주어야 했던 지난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최루탄이 난무하는 강경진압이 아니라 납득할 만한 설명과 합리적 대안을 내어 놓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눌한 듯 조심히 말하라'는 것은 말을 뱉기 전에 한번쯤 멈추고 생각하고 말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구시화복문'이라는 말이 있다.입이 곧 화를 부르는 문이 되기도 하고 복을 부르는 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고 급할수록 그 마음을 늦추어라'는 것은 멈춤의 미학을 강조한 말씀이다. 멈추어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할 때 위태할 것 잊지 말라'는 말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놀라서 금방 튀어나오지만 찬물에서 은근히 데워지는 물에서는 튀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시공을 넘어 노사 선생의 처세의 가르침은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임인년 새해에 호랑이띠의 용맹함으로 모든 재액을 물리치고 복된 한 해를 열어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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