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감독이자 화가·시인인 저자
"사라지는 자료·역사 안타까워"
극단 메들리 〈다시, 삶을…〉 등
책 두 권에 1990년부터 작업 기록

민병구란 인물을 알기 전에는 부엉이 그림을 그리는 한국화가인 줄로만 알았다. 그의 부엉이 그림은 전국에서도 꽤 알려졌다. 그를 알게 된 건 지난해 4월 극단 마산이 가곡전수관에서 <국군의 작별식>이라는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였다. 그는 사실 한국화가라기보다 무대미술이 더 어울린다 싶은 무대감독이었다. 연극무대를 보고 한동안 감탄이 멎질 않았는데,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대였다. <국군의 작별식>은 그가 만든 무대였다. 관객은 배우들의 연기를 중심으로 보지만 연극에 한발이라도 걸친 사람이라면 무대를 유심히 본다. 무대미술가 민병구 감독이 1990년 시작한 무대작업을 총망라해 두 권으로 기록했다. <민병구 무대미술>이라는 자료집이다.

일단 책의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다. 각 권 352쪽, 총 704쪽에 이르는, 전국 각 극단에서 이루어진 무대가 총천연색으로 펼쳐져 있다. 무대스케치도 곁들여져 어떻게 무대가 구상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밀양 극단 메들리의 37회 경상남도연극제 참가작 <다시, 삶을 노래하다>라는 작품이 2권 270쪽에 실려 있다. 2019년 3월 사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올린 작품이다. 무대 공간은 거실이다. 기둥과 격자로 이루어진 문살이 뚜렷한 창문과 계단, 그리고 액자와 가로로 긴 의자들. 대부분 가로와 세로의 조합이 뚜렷하다. 게다가 모두 하얀색이다. 더 나아가 액자 속 그림도 가로세로의 무수한 선이 교차하고 지나가는 형상을 묘사했다. 다만 하나, 안락의자만은 가로세로 하얀색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 브라운색에 휘어진 살대와 다리로 무대의 중요한 지점에 버티듯 놓여 있다.

▲ 민병구 무대감독이 그린 극단 메들리 <다시, 삶을 노래하다> 무대 스케치. /<민병구 무대미술> 갈무리
▲ 민병구 무대감독이 그린 극단 메들리 <다시, 삶을 노래하다> 무대 스케치. /<민병구 무대미술> 갈무리

책장을 넘기다 경남지역 극단의 무대여서 잠깐 눈여겨보았는데도 무대의 예술적 경지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 무대감독이 작품을 어느 정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해석하는지 감이 잡힌다.

그가 작업한 또 다른 경남 극단들의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함안 극단 아시랑 2012년 8월 함안문화예술회관 <그녀들만 아는 공소시효>, 밀양연극아카데미 창단공연 2018년 12월 밀양연극촌 우리동네극장 <박무근 일가> 등이 보인다.

민 감독은 무대미술을 "액자 속에 살아있는 그림을 표현하는 일이며 현실에서 허구를 재현하는 여행 속에서 관객의 상상력과 여정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무대가 어떤 곳인지 생각을 드러낸 문장이 와 닿는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정지되어 있던 모든 무대 구조물에 어둠과 빛이 깃듭니다. 무대 한쪽에 빛을 만들면 다른 어딘가는 어둠이 만들어지고 어둠이 만들어지면 빛이 만들어지는 약속의 시간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모의실험(시뮬레이션)한 세계가 무대 공간 위에서 반복됩니다. 빛 위에 빛을 비추면 더 강한 빛이 만들어지고 빛 아래에 어둠이라는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침묵이 무대 위에 조용히 타오릅니다."

▲ 민병구 무대감독이 만든 극단 메들리 <다시, 삶을 노래하다> 무대. /<민병구 무대미술> 갈무리
▲ 민병구 무대감독이 만든 극단 메들리 <다시, 삶을 노래하다> 무대. /<민병구 무대미술> 갈무리

민 감독은 한국화가·무대미술가뿐만 아니라 시인으로도 벌써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1989년 백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 <고무신놀이>를 펴내기도 했다. 2019년에는 문학저널에서 시로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이번 책 발간에 많은 유명 인사가 축하하고 격려했다. 노경식 도완석 박종보 박정기 이창구 정진수 박계배 등 연극인과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나름대로 겪은 민 감독과의 일화와 작품세계에 대해 들려준다.

민 감독이 왜 이 방대한 무대자료집을 출간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들어본다.

"많은 젊은 무대 미술인들과 제작소가 코로나19와 어려운 예술계의 현실에 경영난을 못 이겨 문을 닫고 다른 작업을 찾으며 작은 모형(미니어처)과 자료들이 휴지통으로, 폐기물로 사라지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았습니다. (…) 정부에서 관리하는 곳에서만 자료가 보관될 뿐 개인이나 단체는 자료 보관 전시실 하나 없어 잦은 이사로 인해 귀중한 자료와 보물 같은 무대장치들이 사라지고 그 속에 담긴 역사마저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지켜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열악한 연극예술계의 현실임을 실감합니다." 컬처플러스. 각 권 7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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