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89명 중 특수교육대상자 9명
일부 과목 빼고 교내활동 모두 함께
편견 없이 서로 어울리며 '다름'이해
혐오·차별에 반대하는 가치관도 키워

사회 전반에 나누고 가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정상성'을 규정하는 오랜 편견은 소수자들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공간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 영향은 소수자 삶에만 미치지 않는다. 나머지 사회 구성원 역시 '다름'을 이해할 기회를 빼앗긴다. 모든 사람이 제 역량을 펼칠 수 없는 공동체는 결국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는다. 세대를 거쳐 내려온 편견에 균열을 내야 하는 이유다. 마중물은 부어졌다. 소수자들과 평범하게 동행하는 공간, 당연하지만 아직 흔하지 않은 풍경은 이미 곳곳에 있다.

▲ 10일 함안군 중앙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장난기 섞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임성호 군은 맨 앞에서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창우 기자
▲ 10일 함안군 중앙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장난기 섞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임성호 군은 맨 앞에서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창우 기자

◇지극히 평범한 풍경 = "서우야 조심해 넘어질라∼."

10일 오전 10시께 함안군 중앙초등학교를 찾았다. 교내 통합교육놀이터 '둘안벗터'에서는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놀았다. 몇몇 아이들은 한쪽에 마련된 탁자에서 보드게임에 열중했고, 그 옆 공간에서는 피구공이 날아다녔다. 갑자기 창가에서 시끌시끌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TV와 연결된 리듬 게임기 위에 김서우(10) 학생이 오른 것이다.

화면 속에서는 음악 박자에 맞춰 다섯 방향의 화살표가 쉴새 없이 올라왔다. 그에 맞춰 서우 발도 바빠진다. 다른 아이들은 뒤에서 발을 함께 구르며 친구를 응원했다. 박자를 놓쳐도 '몇 개는 맞추고 있다'라고 외쳐 주거나,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다. 곡이 끝나자, 한 친구는 "서우 점수 F다 F∼"라며 짐짓 놀리기도 했다. 서우도 크게 괘념치 않은 듯, 웃으며 게임기에서 내렸다.

▲ 10일 함안군 중앙초등학교 통합교육놀이터 '둘안벗터'에서 김서우 학생이 리듬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창우 기자
▲ 10일 함안군 중앙초등학교 통합교육놀이터 '둘안벗터'에서 김서우 학생이 리듬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창우 기자

함께 놀다가 웃고, 놀리다가 또 웃고. 또래 친구라면 누구나 겪었을 평범한 풍경이다. 사실 서우에겐 뇌병변·시청각 장애가 있다. 발음이 조금 부정확하고, 귀에는 보청기를 꼈다. 리듬 게임을 할 때도, 능숙하게 박자를 맞추지 못했고, 가끔 몸을 휘청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우와 친구들이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중앙초교는 장애통합교육을 진행하는 전교생 89명의 작은 학교다. 학년에 한 학급씩 일반학급 6개, 특수학급(도움반)은 2개를 두고 있다. 학생 중 9명이 특수교육대상자(중증장애인 1명 포함)이고, 이 중 2명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등록장애인이다. 장애인이 아니라도 학습·건강상의 문제로 특수교육대상자인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은 각자 쫓아가기 어려운 일부 과목을 제외하면 모든 학교생활을 친구들과 함께한다. 수업시간은 물론, 각종 학교 단체 행사도 마찬가지다. 이곳 아이들에게 '다름'은 친구가 되려면 당연히 맞춰야 하는 이해의 영역이다.

▲ 함안군 중앙초교 학생들이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이 공동 진행한 혐오·차별 대응 역량 강화사업 공모에 제출한 4컷 만화 중 박지빈 학생 작품. 비만으로 놀림받던 여학생이 살을 빼도 결국 얼굴 평가를 받는다는 내용으로 편견 어린 사회를 비판했다. /중앙초교
▲ 함안군 중앙초교 학생들이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이 공동 진행한 혐오·차별 대응 역량 강화사업 공모에 제출한 4컷 만화 중 박지빈 학생 작품. 비만으로 놀림받던 여학생이 살을 빼도 결국 얼굴 평가를 받는다는 내용으로 편견 어린 사회를 비판했다. /중앙초교

보청기에 이상이 생길 때면, 친구들은 서우를 특수교사에게 데려가곤 한다. 이젠 부정확한 발음도 잘 알아듣는다. 조건 없는 배려의 대상도 아니다. 서우가 교실에서 떠드는 남학생들에게 "시끄러워∼ 조용해!"라고 외치면, 여학생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그 뒤에서 함께 면박을 준다. 전교생이 모인 학생자치회 때, 가장 먼저 손드는 사람도 서우다. 서우가 한 번 나서고 나면 다른 아이들도 용기를 얻어 이것저것 의견을 내기 시작한다. 서우의 5년 지기 절친 김나현(10) 학생은 "서우는 남들이 못 따라하는 그림 실력이 있어서, 수학 문제를 가르쳐주는 대신 그림 그리는 걸 배우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마음이 맞았고,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친구"라며 "곧 방학이지만 영상 통화를 자주 걸 것"이라고 말했다.

▲ '5년 절친' 김서우(오른쪽) 학생과 김나현 학생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 '5년 절친' 김서우(오른쪽) 학생과 김나현 학생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일상이 가치관이 된다 = 학교는 각자 다른 아이들이 가치관을 키울 수 있는 공간·기회를 마련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서우가 리듬 게임을 했던 둘안벗터는 원래 학교 급식실이었지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지원으로 장애·비장애아동 통합 놀이공간으로 꾸몄다. '에그머니' 활동도 이색적이다. 아이들은 입학할 때 유정란 하나씩을 받고 교내 닭장에서 부화시킨 뒤, 다시 알을 낳을 때까지 돌본다. 알은 선생님들이나 주민들에게 직접 팔기도 한다. 아이들은 다른 생명을 돌보는 활동에서 공존을 배운다.

운동장에는 2인용 자전거도 비치했다. 일부 도움반 수업을 듣는 임성호(11) 학생은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고 친구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저학년 동생들에게 2인용 자전거를 태워주기를 좋아한다.

성호는 지난해 학예회에서 5학년 대표로 사회를 보기도 했다. 다른 학교라면 인기 많고 말 잘하는 학생이 맡겠지만, 선생님은 성호에게 기회를 줬다. 성호는 "같이 사회를 보던 친구가 도와줘서 안 틀리고 잘했다"라며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반 친구 김윤아(11) 학생은 "성호는 전자기기나 차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만들기 과제가 있을 때면 친구들을 잘 도와준다"라며 "새해 소원이 '우리 반 여자애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던데, 이루려면 당장 짓궂은 장난은 멈춰야 할 것"이라며 웃었다.

▲ 함안 중앙초등학교 입구에 무지갯빛 바람개비가 팔랑이고 있다.  /이창우 기자
▲ 함안 중앙초등학교 입구에 무지갯빛 바람개비가 팔랑이고 있다. /이창우 기자

일상에서 다름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 아이들은 모든 편견을 반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중앙초교 학생들이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이 공동 진행한 혐오·차별 대응 역량 강화사업 공모에 제출한 4컷 만화를 보면, 외모지상주의에 빠지거나 장애인 편의시설을 멋대로 이용하는 사람들, 인터넷에 혐오 댓글을 다는 이들을 재치 있게 비판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해온 고민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세대가 공유하는 가치관은 돌처럼 단단하다. 그 안에 담긴 편견과 차별의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흐름을 되돌리는 열쇠는 역시 교육일 수밖에 없다. 하얀 도화지와 같은 아이들은 다음 세대 공동체를 가꿀 희망이다. 서우 학생 어머니 황성애(46) 씨는 "서우가 일반 학교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었다"라며 "친구들과 잘 지내는 모습,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학년이 되어 다른 아이들이 공부로 바빠지면, 함께 커나갈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라며 "지방은 특수학교도 부족한 현실이기 때문에 교육 환경이 많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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