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주 씨 폐 이식 후유증 심각
5개월째 조정위 중재안 못 내놔
신속·충분한 배·보상 대책 촉구

경남 출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55) 씨가 위독하다. 가족들은 병원비와 간병 부담에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구제조정위원회는 아직 명확한 조정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유족·연대 단체는 구제조정위원회에 조속한 배·보상안을 요구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10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인근 교보빌딩 앞에서 배구선수 출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안은주 씨 위독 사실을 알리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에 충분하고 신속한 배·보상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조정위 사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안 씨 언니 안희주 씨, 2020년 같은 사고로 아내를 잃은 김태종 씨,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3명이 모여 손팻말을 들었다.

안은주 씨는 2007년 3년간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했다. 배구실업팀에서 선수생활까지 할 정도로 건강했던 안 씨는 지금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폐 이식 수술을 2번이나 했고, 신장·호흡기능 이상, 하반신 마비 등 각종 후유증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손글씨로 취재에 응할 정도는 됐지만, 현재는 겨우 입모양만 낼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안 씨 가족들은 그동안 쌓인 병원·간병비 때문에 거액의 빚을 졌다. 2020년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 특별법 개정으로 폐손상 3단계 피해자인 안 씨도 구제인정 대상자가 됐지만, 전체 비용을 지원해주지는 않는다. 안 씨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는 아직 기업들의 책임 있는 사과도, 배·보상도 받지 못했다.

▲ 경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안희주 씨가 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교보빌딩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앞에서 배·보상안을 촉구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 경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안희주 씨가 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교보빌딩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앞에서 배·보상안을 촉구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안희주 씨는 "동생은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인정을 목표로 정말 열심히 투쟁했다"라며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타박도 했지만, 이젠 동생의 심정을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주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가해 기업들에서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언니가 돼야겠다는 마음으로 거리에 나왔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피해자 단체와 기업들이 각자 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장은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맡았다. 하지만, 위원회가 구성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상을 등지는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폐이식을 받고 투병하던 김응익 씨가 숨졌고, 이젠 안 씨도 위독한 상태다.

피해자 가족들이 기다리는 조정안은 곧 나올 전망이지만, 안 씨가 원하는 기업 책임인정·사과가 담길 가능성은 낮다. 안식 조정위 사무국장(법무법인 한결 대표변호사)은 "피해자 단체·기업들과 협의해서 2월 내 발표를 목표로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라면서도 "배상을 전제로 하는 조정안은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동의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법원은 CMIT, MIT 성분 제품을 제조한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기업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향후 재판에서 불리해진다.

최예용 소장은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하고도 신속한 배·보상안을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배·보상 조정안이 일단락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다음 정부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재발방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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