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경쟁에 결혼·출산도 특권이 돼
그럼에도 '균형'외면하는 목소리 여전

돈이 가장 대우를 받던 시기는 IMF 외환위기 때였다. 저축은행 금리가 연 40~50%까지 오르고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정리해고는 일상이었다. 그때 일부 계층의 호화 룸살롱 건배사는 '이대로, 영원히'였다. 실업자가 갑자기 3배로 늘면서 노동의 가치, 이른바 사람값은 바닥을 쳤다. 방송 광고는 IMF 이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골프 프로그램 광고 판매는 거의 100%였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부쩍 늘어난 것도 그때부터였다. 기업들은 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낮은 임금의 비정규직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고용의 불안'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IMF 때의 악몽이 아직도 기억에 뚜렷한데 대선국면에서 나오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일부 발언들은 정말 소름 끼친다. '비니좌' 노재승은 정규직은 필요 없고 모두 비정규직으로 해야 한다는 '정규직 제로시대'를 주장한다. 그를 청년대표로 영입하려고 했던 정당의 후보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급여와 주 10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조건으로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무'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300년 동안 부를 유지해 온 경주 최부자 집의 가훈 가운데 하나는 흉년에 땅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죽 한 그릇에 땅을 팔았다는 '죽배미논'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정상적인 판단이 어렵다. 최부자 집의 가훈은 곤궁함을 악용해서 내 재산을 불리지 말라는 뜻이다.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 장시간 노동, 불량식품을 먹을 수 있는 자유는 현대판 '죽배미논'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세계 최장수국가 1위는 일본이었다. 지난달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20~2025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4.1세로 일본의 84세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영국 임피리얼칼리지 연구진도 203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여성 90.82세, 남성 84.07세로 최장수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와 식생활 개선 등이 원인이지만 저출생도 또 다른 요인이다. 아기를 낳지 않으니 영아 사망이 드물고, 그러다 보니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것이다. 세계적인 사회생물학자 장대익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IQ가 두 자리가 안되니 애를 낳는 것이겠죠. 애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아무리 계산해봐도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저출생은 혹독한 경쟁환경에서 집단이 생존하기 위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인구 리스크는 저출생, 초고령화, 지역 소멸 등 3가지이다. 여기에 4차산업혁명사회를 맞아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를 더욱 줄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최근 한 달 사이 서울 일간지 칼럼 제목은 노골적인 지역혐오로 가득하다. '지역균형개발은 달성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자', '블라인드 채용은 왜 위험한가','10조 쓴 공공기관 이전, 반짝효과 후 부작용 커져'.

2015년 10월 박근혜정부 시절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집단 소개팅 같은 미세한 대책들도 있었다. 그 아래 달린 댓글은 이랬다. "또 노예를 낳으라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아예 대를 끊을 수 밖에 없다", "애 안낳으면 20년 뒤 나라가 휘청하겠지요. 근데 낳으면 내가 휘청해요".

사랑과 결혼과 출산이 특권이 된 사회, 우린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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