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아트홀서 다음달 20일까지
가포해수욕장 옛 모습 향수에 젖고
중원로터리 시계탑 추억에 빠지고
초가지붕 많았던 웅남동 격세지감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거의 없다. 어쩌다 '어, 이게 언제 생겼지?' 하고 또한 무심코 넘어간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 살다 보면 어느새 상전벽해처럼 완전히 바뀌어버린 우리 지역을 발견하곤 놀란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친구와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면 예전 동네의 모습이 생생하게 소환된다. '야, 여긴 15년 전만 해도 죄다 감나무 밭이었는데, 이렇게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네.' '주택단지로 빈틈이 없는 이곳은 예전에 미나리꽝이었지. 흙먼지 날리면서 논길을 걷곤 했었는데.' 그런 추억으로 걷게 하는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0년간 이어진 창원의 정체성과 통합 이전의 창원·마산·진해의 개성은 물론, 세 도시가 합쳐져 더욱 강력해진 현재의 모습, 창원시의 미래 청사진까지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모여 발전의 역사가 되는 현장을 엿보며 전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미래를 꿈꿔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5일 창원 성산아트홀 전시관 로비에서 개최된 '특례시 출범 기념 창원 100년 사진전' 개막식에서 허성무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랜 기간 이 지역에 살면서 도시의 변화하는 모습과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왔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했을 말이다. 창원 100년 사진전은 분명 사람들의 일상이 모여 역사가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해 3전시실과 1전시실을 임시로 바꾸어 순서를 매겼다. 기존 3전시실이었던 1전시실에 들어가면 창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골포국이 세워졌던 기원전후 시기부터 연표가 기록되어 있다. 역사 공부에 머리가 아팠던 이라면 한 벽면을 거의 채운 연대표 앞을 걷기조차 어려울 수 있겠지만, 눈에 띄는 역사 한둘 정도 알아두고 넘어가도 좋을 듯하다.

북면에 있었다는 백월산 남사가 통일신라시대 세워졌었구나. 조선 태종 때 의창과 회원이 합쳐져서 창원이 되었네. 지금 창원·마산·진해가 합쳐져 창원이 되었는데, 그때도 통합의 역사가 있었군. 마산~진해에 철도가 생긴 게 일제강점기 1927년이구나. 1960년 3.15의거가 일어난 건 알고 있는 거고. 2010년 7월 1일 3개 시가 통합했으니 통합 창원시 역사는 만 12년 다 되어가는군.

2전시실은 '세 도시 이야기'로 마산과 진해·창원으로 나누어 각각의 근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대부분 양해광 창원향토자료전시관장이 제공했다. 모두 250장이다. 양 관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사흘 동안 선별작업을 했다고 전했다.

▲ 1972년 8월에 찍은 가포해수욕장 전경 사진.
▲ 1972년 8월에 찍은 가포해수욕장 전경 사진.

1978년 5월 마산시민의 날 행사를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산호동 도로 중앙선을 따라 행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때는 이러한 행사가 가능했다. 도로변 왼쪽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즐비하다. 1972년에 찍은 가포해수욕장 사진을 보니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모래사장의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다. 1991년에 찍은 한일합섬 사진은 온갖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 너른 땅의 수많은 공장이 어느 순간 철거되고 공터로 변했을 때, 그곳을 걸으며 한일합섬 땅이 이렇게 넓었나 했던 기억.

1960년 찍은 진해 중원로터리 전경 사진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진해에 놀러 갔다가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한 이가 많을 것이다. 당시 이곳은 기념촬영 필수코스였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시계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했었는데, 시계탑이 언제 사라졌지, 궁금하다. 자료를 보니 2007년 11월 15일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시계탑은 옛 경찰서 부지에 조성된 공원으로, 모형 거북선은 북원로터리로 옮겨졌다고 나온다. 진해에 자주 가지 않아 그런지 부지불식간에 세상이 변해버린다 싶은 생각이 든다. 1980년 5월의 진해 흑백다방은 지금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오히려 신기하기도 하다.

1974년 높은 곳에서 찍은 창원의 웅남동은 여전히 초가지붕이 많은 동네다. 1980년이면 이제 겨우 40년 전인데 용지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이 사진에는 용지문화공원도 없고 신월동 그 빽빽한 주택들도 하나 없는 데다, 저 멀리 미래의 법원이 들어설 땅과 대방동마저 허허벌판이다. 한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 도시가 아닐까 싶다.

▲ 1992년 창원역과 도로의 모습을 항공촬영한 사진.
▲ 1992년 창원역과 도로의 모습을 항공촬영한 사진.
▲ 1980년대 용지호수 항공촬영 사진으로 허허벌판이었던 신월동 토월동, 멀리 대방동이 보인다.
▲ 1980년대 용지호수 항공촬영 사진으로 허허벌판이었던 신월동 토월동, 멀리 대방동이 보인다.

1992년에 찍은 창원역 앞 항공사진이 또 기억을 끄집어낸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초라한 역사가 주변의 낡은 집들 사이에서 존재감 없이 앉은 모습이다. 1980년대 초 이곳에서 진주행 기차를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서너 사람이 앉기도 벅찬 낡은 나무걸상 두어 개와 가운데엔 연탄난로 하나가 전부인 대합실. 그리고 벽에 붙은 포스터,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사진 아래쪽은 구암육교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곳은 창원과 마산의 경계지점이다. 당시 시내버스가 이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당시 '버스안내양'이라고 불렸던 여성 승무원이 차내를 돌며 승객에게서 플라스틱 조각을 돌려받았다. 당시 마산과 창원 경계를 넘어가려면 요금을 더 내야 했는데, 이 플라스틱 조각이 확인하는 증표로 쓰였다. 여기까지 기억이 미치자 진작 그런 모습, 사진에 담아뒀더라면 싶은 생각이 든다.

▲ 2008년 마창대교 개통 때 걷기대회 모습을 담은 사진.
▲ 2008년 마창대교 개통 때 걷기대회 모습을 담은 사진.

3전시실은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위주로 전시되었다. 1981년의 부녀자 농기계 교육, 1982년 겨울철 보리밟기, 1984년 동읍 모내기 경진대회, 1984년 진동큰줄다리기 행사에 군집한 사람들.

사진 속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지는 않나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는 사진도 많다. 2008년 마창대교 개통 걷기 사진도 인상 깊다. 오래된 옛날이 아니어서 어느 정도 젊은 사람도 마창대교의 시작점을 많이 기억할 것이다. 다리 상판을 올리는 장면도 기억할 것이고 개통 직전 다리 가운데서 차를 세워 경치 구경을 하던 경험도 기억할 것이다.

2층 4전시실은 공모를 통해 수집한 시민 사진들과 창원의 기업들 구역으로 꾸몄다. LG전자 창원공장, 몽고식품, 무학, NC다이노스, LG세이커스 등이 사진과 역사성을 지닌 현물로 전시했다. 이 전시는 2월 20일까지 열린다. 문의 055-268-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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