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출신·활동 시인 6명
합동시집 판매해 기금 마련
제주 시인 5명에 창작 후원

8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공유공간 2호점에서 꽤 독특하고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시골시인 릴레이 프로젝트 창작기금 전달식-시골시인 K가 시골시인 J에게'. 경상도 출신 시인들이 시집을 팔아 마련한 돈을 제주도 출신 시인들에게 창작기금으로 전달한 것이다. 경상도 출신 시인들 역시 시집을 낼 때 누군가로부터 창작기금을 받아 낼 수 있었기에 그 일이 가능했다. 릴레이로 이어지는 시인들의 창작 후원은 한국 문인 사회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시골시인 릴레이 프로젝트는 성윤석 시인이 시골시인 K에게 창작기금을 후원하면서 시작됐다. 시골시인 K는 경상도 출신의 젊은 시인들이 서울에 집중되는 문단의 현실에서 '시로 맞짱을 떠보자'는 결기에서 형성됐다. 시골시인 K는 6명으로 구성됐다. 석민재, 권상진 유승영, 권수진, 서형국, 이필 시인. 이들은 지난해 <시골시인-K>라는 합동 시집을 냈지만 문단에서 흔히 말하는 동인이 아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서로 알게 됐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권상진 시인은 경과를 보고하면서 시골시인 K가 만들어진 것은 2020년 8월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서로 몰랐어요. 모두를 아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었어요. 각각 도시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7월이었고 8월에 투표를 통해 명칭을 시골시인 K로 정했어요. 그리고 12월 말 원고를 모아 출판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발행된 합동시집 <시골시인-K>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처음 시집 1000부를 찍었다. 대부분 팔려나갔다. 개인 시집이나 동인지의 판매 현실을 고려하면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게다가 시집은 지난해 세종도서에 선정돼 1300부를 더 찍어낼 수 있었다. 시골시인 J에게 전달된 창작기금은 그렇게 마련된 것이었다.

▲ 8일 시골시인 릴레이 프로젝트 창작기금 전달식에서 서형국(왼쪽) 시인과 김효선 시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 8일 시골시인 릴레이 프로젝트 창작기금 전달식에서 서형국(왼쪽) 시인과 김효선 시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이어서 서형국 시인이 말했다. "성윤석 시인께서 후배들 챙겨준다고 출판비용까지 마련해주셨는데, 우리가 이걸 책으로 내고 보니까 좋은 취지로 시작된 이것을 여기서 끝내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의를 통해 이런 취지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하고 의견이 모였어요. 지방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대신 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는데, 그때 김효선 시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로선 너무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제주 출신 김효선 시인은 "시골시인 K가 먼저 수고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두 번째로 정말 편하게, 서형국 시인과 이필 시인께 계속 자문을 하면서 진행했는데 그 덕에 어려움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시골시인 K의 창작기금을 전달받은 제주 출신 시인들은 '시골시인 J'라고 이름을 붙였다.

권상진 시인이 창작기금 성격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창작기금에 대해서는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형편이 되고 마음이 되면 하면 되는 겁니다." 시골시인 J는 최근 원고를 모두 취합해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3월쯤 시집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제목은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어받아 <시골시인-J>가 될 것이다. 김효선 시인은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하고 동참했다. 우리도 당연히 시골시인 K가 했던 것처럼 이어가겠다"고 했다.

서울에 집중되고 시류에 기댄 기성 문단에 실력으로 경쟁하고자 시작된 시골시인 릴레이 프로젝트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골시인 K는 이날 창작기금을 시골시인 J에게 전달함으로써 역할을 다하고 해체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시골시인 J가 이제 그 역할을 하고 다음 또 어느 시골시인들에게 취지가 전파될 것이다. 시골시인 J는 신윤주, 허유미, 고주희, 김애리샤, 김효선 이렇게 5명으로 구성됐다. 성윤석 시인은 "젊은 시인들 시를 봤는데 수준이 높다"며 "실력으로 봤을 때 이들은 시골시인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어쩌면 자기들만의 성벽을 쌓고 함량 미달 작품들을 예사로 발표하는 기성문단의 안일함을 에둘러 비판한 표현이기도 하겠다. 제주 출신 시골시인 J는 다음에 어느 시골시인에게 다시 선한 영향력을 끼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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