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가장 긴 동짓날이 절망 같아도
그 순간은 새로운 시작이자 출발

얼어버린 까치밥에 눈독을 들이다/맞혀서 떨어뜨릴 요량으로 /작은 돌을 던져봤는데 /남의 밥 탐낸 대가만 /그저 허무하게 멀리 떨어졌다/입안에서 사각거리는 홍시 한 개/까치에게 적선 받고픈/중 하나/오래도록/생각의 감나무 아래 서성였다 -시 '까치밥' 전문.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산이며 바다로 가서 해돋이를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빈다. 그때의 붉은 해가 홍시빛이다. 그래서 한겨울 감나무에 달린 붉은 홍시를 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대하는 희망처럼 애처롭다가도 떫은맛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먹는 얼음 서린 홍시에서는 인고의 세월을 넘긴 꿀맛을 느낀다.

그런데 1월 1일에 맞이하는 새해보다 더 빠른 새해도 있다. 바로 붉은 팥죽을 먹는 동짓날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을 한 해를 시작하는 날로 쳤다.

그렇다면 어째서 옛사람들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로 한 해의 시작을 삼았을까? 그것은 마지막, 또는 궁극에 이르면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고 보는 희망에 대한 믿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거니와 이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예시이기도 하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창궐한 지도 벌써 2년이 되었다. 마치 중세시대 유럽의 흑사병처럼 퍼진 코로나로 말미암은 경제적·사회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인명 피해 또한 전 세계적이다.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코로나 변이종까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어 영업에 제한을 받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동짓날 밤처럼 길고도 깊기만 하다.

일 년 중 가장 긴 밤인 동짓날처럼 코로나 시대는 이처럼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해가 길어질 기미도 안 보이는 캄캄한 그날처럼 코로나를 극단의 절망이거나 생의 마지막처럼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에겐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어둠의 언덕을 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류학자들은 유인원으로부터 최초의 현생인류인 '생각하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환경의 극단적 위기 속에서 갖게 된 불굴의 생존의식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유인원에서 변화를 뛰어넘은 승화의 결과가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을 한 해의 새로운 시작으로 봤던 옛사람들은 인류학자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런 이치를 일찍이 꿰뚫어 봤던 것이고, 이런 안목을 우리는 지혜라고 말한다.

첫발을 떼기 전에 너무나 캄캄하고 절망적이어서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자 진정한 출발이라는 말이다. 멈춰 서 있는 시간은 새롭게 마음을 먹는 순간이면서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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