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개성 등으로 묘사되지만
조건·환경 가장 불안정한 세대

어색한 사람과의 대화 주제로 가장 만만한 건 소개팅 단골 질문이라고도 불리는 취미나 관심사에 대한 내용이다.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그 뻔하디 뻔한 아이스브레이킹용 질문에 남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제 취미라며 내놓을 때, 나는 구체적인 답변 대신 적당히 웃음으로 화답하곤 했다. 별것 아닌 그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꼭 내가 내향형 인간이어서만은 아니다. 관심사는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선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었고, 취미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였다. 열에 아홉은 가지고 있는 독서나 영화감상 같은 무난한 선택지를 내밀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건 꼭 위장하는 것만 같아 내키지가 않았다.

최근 다른 이의 취미로 가장 많이 들었던 선택지는 취미계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독서와 영화 감상, 그리고 최근 상승세를 탄 운동이었다. 형형색색 다양한 '취미'의 종류가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져 머릿속에 하나씩 쌓일 때마다, 슬쩍 시야에 덧씌워지는 그들의 휴일이 참 다채롭게 느껴졌다. '다들 놀 때도 정말 열심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잘' 노는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어느새 '노는 것도 잘 놀아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이 들곤 했다. 처음엔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인 줄 알았다. 일도 공부도 잘하기보다는 그럭저럭 해내는 게 다였으면서 노는 것도 제대로 '잘' 놀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내 또래인 20대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20대는 너무 쉽게 '청춘'과 동격으로 여겨지고, 청춘은 또 물 흐르듯 활기, 열정, 도전과 같은 낱말로 치환된다. 그 덕에 20대에 '이것'은 해야지, 라는 문장 속 '이것'에 해당하는 일들은 계속해서 불어난다. 멋들어진, 개성이 담뿍 담긴, 활력을 띠는 취미를 가지는 것 또한 그에 해당하는 일 중 하나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내밀어보려 한다. 청춘, 활기, 열정, 도전 따위의 단어로 묘사되는 20대, 개성이 드러나는 멋진 취미를 즐기는 20대. 이는 정말 20대 내부에서 자신들에 대해 스스로 정의내린 모습일까? 내가 내놓을 답은, '아니요'.

앞서 말한 '잘 노는 20대'의 진부하고도 전형적인 이미지는 외부에서 20대에 대해 막연히 그려내는 모습에 더 가깝다. 20대는 취미를 충분히 즐기며 '잘 놀기'에는 의외로 많은 상황이나 조건이 받쳐주지 않는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음은 물론이고, 혼자 사는 사회초년생이라면 집 밖에서의 일 또는 학업과 집 안에서의 가사에 쏟는 시간만 해도 하루의 시간이 빠듯하다. 불안정함 속에 요동치는 불안과 부담 등으로 심적 여유 또한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체력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마저도 '젊음'이라는 로열티를 가지고 있음에 비해선 특별한 수준은 아니다. 취미를 즐기며 '잘 노는' 데에는 물적이든 심적이든 자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 앞에서, 잘 논다던 20대는 사실 잘 놀기 위한 조건이 가장 부족한 세대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취미를 잘 만들고 가꾸며 잘 노는 20대들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20대는 '잘 놀기'에는 너무 많은 조건과 환경이 불안정하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어제의 나처럼 '취미 하나 없는 내가 이상한가? 노는 것도 잘 못 하네, 한심하다'라며, 무엇이든 스스로를 탓하는 일이 너무 익숙한 실재하는 20대들에게, 사실 우리는 지금 '잘 놀기'가 어려운 게 더 당연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딱 그 이유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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