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등바등하는 어리석음 일깨우는 비둘기
사람들 안부 물으며 따뜻이 살면 될 것을

오늘 새벽 내 집에 비둘기가 찾아왔다. 후드득 날갯짓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10층 가파른 베란다 창틀에 깃털을 떨며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있다. 창틀에 기대어 오도카니 앉았던 비둘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깍 울음을 토해내며 어디론가 휙 날아가 버린다. 이 겨울비 속에 휘리릭~ 어디로 간 것일까? 무슨 일로 슬펐을까? 비둘기의 눈이 빨갛다. 잠시 나와 마주친 새는 울어서 빨개진 눈이 창피했을까? 안락한 쉼터는 아니더라도 제가 쉬던 곳에서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모른 척 외면해 줄걸. 아직 어둠도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비에 떨고 있는 그를 보며 안타까운 내 마음만 챙긴 것이 후회된다. 어쩌자고 울고 있는 비둘기를 본 것일까? 측은지심으로 맺어진 비둘기와의 짧은 인연의 순간,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간과 인연들도 저렇게 짧은 외마디 울음이 아닐까…. 마음이 시려온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안부도 물으면서 그렇게 살면 될 것을, 아등바등 집착하는 내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려 밤새 비둘기는 제 잠을 설쳐가며 나를 찾아왔나 보다.

한바탕 꿈으로 끝날 인생인데 끝없는 욕심에 잠 못 이루는 네 모습이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까악, 그래서 측은한 건 너라고 까악, 그렇게 울어 주는 손님을 맞으니 씁쓸한 목구멍으로 뜨거운 커피 한 잔 넘기고 싶어진다. 진한 커피 향에 정신이 깨어나니 며칠 전 이은문화살롱 밴드에서 마음을 빼앗던 글이 생각난다. 커피 향이 진하게 피어오르는 매혹적인 그림의 환영을 파고들면, 그 실재의 끝에는 노동에 찌든 어린 소년의 참혹한 현실이 들어있다던가. 세상은 하나의 인드라망, 서로 얽혀 분리될 수 없는 그물코임에도 커피 맛이 쓰고 쌉싸름한 이유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 삶의 방식을 성찰하게 만든 글이었다.

그런 반성 사이로 어제 만났던 내담자 얼굴이 떠오른다. 성매매 집단촌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대견하고 예쁜 아가씨. 이 황량한 세상에서 제 몸 하나 믿고 살아왔다는 그녀, 몸이 아플 때마다 삶이 너무 서러워서 술 없인 견딜 수 없었다는 가엾은 처녀.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 이 세상의 구조가 괘씸하고, 그럼에도 잘살아 보리라! 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했을 그 부질없음이 슬펐다. 세상이 아니라 자신을 탓하는 그녀의 죄책감에 분노가 더 일렁였지만, 세상은 다행히 분노를 치유할 사랑의 묘약도 보내주었다. 동시성의 법칙일까? 어제 만난 신부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못나 빠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취기 때문일까…. 우리는 모두 조용히 울고 있었다. 나는 죄가 없는 듯 쉽게 타인과 세상을 단죄했던 순간들과 상담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의 얼굴이 어룽거렸다.

하얀 눈이 내린 저 길을 우리가 잘 걸어야 너희들이 사는 세상이 조금은 수월할 텐데…. 여전히 비틀거리는 내 발걸음이 민망해서 어디든 숨고만 싶은 밤이었다. 추락을 뚫고 다시 밝아온 새벽, 반가운 카톡이다. "샘, 저 뽀대나게 한번 살고 싶어예. 검정 꼭 합격해서 중학교 졸업장도 따고, 어둠 속에 사느라 못한 것들 사회에서 도와준다니 이제 다 할 거라예." "하모,하모. 대단해여."

훅 끼쳐오는 찬 새벽 공기가 다시 생의 감각(김광섭의 시 제목)을 일깨워 주는 좋은 아침. 어제는 무거웠으나 오늘은 살아있음이 좋은, 나는 이 간사한 삶을 사랑한다. 그래 이만하면 충분하다. Grasias a la Vida(아르헨티나 민중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제목)! 삶이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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