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유래 근거 등 정보 취약
일제 등 왜곡 지명 정비 시급
역사·기원·상징성 등 고려해야

전국 곳곳에 있는 산이나 들, 골짜기, 연못 등의 이름을 그냥 내버려 둬도 될까. 아니다. 유명 지명만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하고 작은 지명 역시 후세에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철저히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지리정보원이 2020년 1월 경남도에 보낸 '지명세부조사표 및 검토결과 미고시 지명' 자료를 살펴보면, 합천군 가야산국립공원 등 유명 지명을 비롯해 산, 들, 다리, 고개, 골짜기, 연못, 소류지 등 시민에게는 생소한 지명들이 미고시 지명으로 대거 통보됐다.

마산항, 주남저수지 등 20~30여 개 유명 지명을 제외하면 사슴산, 할미봉, 국사봉, 먼덩마을, 당넘어, 관포재(이상 거제), 오운들, 정동들, 구룡들, 장박들, 당동들(이상 의령), 오지방고개, 장식골고개, 갓등, 죽마등(이상 남해), 죽전들, 삼태골들, 개구리산, 으봉산, 음내무재, 방말재(이상 창원) 등 현지 주민이거나 지리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이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이 같은 지명까지 포함해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나선 것에 지명 관련 자료가 빈약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부분 지명 관련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검토나 심의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맞는 이름인지 여부조차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2015년 전국 단위 사업이 시작돼 2019년 경남, 부산, 울산, 경북, 대구 등 영남권 사업도 결정해 추진 중이다.

잘못됐거나 왜곡된 지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또 알려지지 않은 향토역사를 발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일례로 국토지리정보원이 2016년 펴낸 책 <지명의 종류별 정비 지침 마련 연구>에는 경남 고성군의 무량산과 대곡산 지명을 정비한 사례가 나온다.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 하기호 씨가 각종 고문헌과 고지도,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자료를 제공해 결국 지명을 변경했다는 일화다.

"무량산은 소가야 도읍지로 생긴 이름이거나 아니면 그 이후 고성의 옛 선조들이 섬기는 산으로 내려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일제가 함부로 그 위치를 바꾸어 무량산이 있던 자리는 대곡산으로, 천왕산이 있던 자리는 무량산으로, 철마산이 있던 자리는 천왕산으로 바꿔 놓고 말았으며, 천왕산은 그 후 현재 193m의 낮은 산에다 그 명칭을 다시 옮겨 놓아 보잘것없는 이름을 매기어 놓고 말았다."

2014년 이 지역 산명은 이런 조사를 거쳐 변경됐다. 583m 무량산은 천왕봉, 543m 대곡산은 무량산, 무량산에 포함되는 철마산은 철마봉으로 바뀌었다. 특히 천왕봉으로 불리던 193m 산은 인근 마을 어르신들이 서재산으로 불렀다는 말에 따라 서재봉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역사성, 기원성, 상징성 등이 명확하게 증명된 지명을 존중한다는 기본 원칙을 따른 것이다. 미고시 지명으로 통보된 산, 들, 다리, 골짜기, 연못 등도 이런 절차를 밟아 역사성을 부여하고 후세에 물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일본이 우리 역사와 전통을 비하·말살하려 왜곡한 일본식 의심 지명 대상 13곳 정비도 시급하다. 경남도는 2020년 2월 일제지명 정비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창원시 등 해당 시군은 지명 변경을 검토 중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정비 담당자는 "1960년대에는 지명 자료 수집에 급급해 속성정보가 취약하다. 속성정보란 지명 유래담, 즉 왜 그런 지명으로 언제부터 불리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정보들을 취합하고자 지명정비 작업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명은 체계적으로 정비·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삶의 역사가 새겨진 문화유산"이라며 "법적으로 시군 단위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 만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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