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로 온 경기도 토박이
뮤지컬 출연 계기로 '안착'
10년 가까운 기간 13편 출연
연기·연출까지 다재다능

모로 가나 기어가나 서울 남대문만 가면 그만이라고 했던가. 방법이야 어떻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뜻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서울바라기'를 빗댄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을 하려면 서울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짙게 깔린 문화예술계에서 이를 깨트리고 있는 연극인이 있다. 진주 극단 현장 소속 송광일(35) 배우 이야기다.

송 배우는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옛 속담과 반대 삶을 살아왔다. 대학 시절을 빼면 줄곧 수도권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2013년 아무 연고 없는 경남에 정착했다. 대학(연극 전공)을 막 졸업한 이듬해 고향인 경기도 성남을 떠나 진주로 왔다. 극단 활동이 계기가 됐다. 진주지역 극단 현장 정식 단원이 된 뒤로 고향과 310㎞ 넘게 떨어진 머나먼 동네에 짐을 풀었다.

"2012년 대학교 4학년 때 진주남강유등축제 주제공연이었던 뮤지컬 <유등>에 코러스 외부 배우로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극단 현장에서 제작한 공연인데, 이때 처음 진주에 와서 현장 식구들을 알게 된 거예요. 처음엔 이 공연만 하고 갈 생각이었거든요. 여기에 오고 나서는 진주에서 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아예 눌러앉게 된 거죠."

▲ 송광일 배우는 2013년 아무 연고도 없는 진주에 자리 잡은 뒤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송 배우 공연 장면.  /극단 현장
▲ 송광일 배우는 2013년 아무 연고도 없는 진주에 자리 잡은 뒤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송 배우 공연 장면. /극단 현장

뮤지컬 출연도 우연하게 잡은 기회였다. 학창 시절 연기 입시 과정에서 인연을 맺게 된 현직 연극배우 추천으로 현장과 연결됐다. 지인과 극단 관계자 간 평소 친분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양측 사이에서 "서울에 작품 출연할 배우 없냐"는 얘기가 오간 적이 있었는데, 그런 가운데 송 배우가 <유등> 출연을 결정짓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 연기 입시 준비를 했었어요. 그때 알게 된 연극배우 선생님과 저희 극단 대표님, 극단 형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였거든요. 배우 모집을 하는데 서울에 배우 없냐고 해서 선생님이 저를 극단에 소개해준 거예요. 그게 진주와 연을 맺게 된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정식단원이 된 뒤부터 작품을 쉰 적이 없다. 지금까지 배우로서 참여한 작품은 13편.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해 한두 편씩 꼭 무대에 섰다. 작품이나 배역을 따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마주한 한숨과 고통의 시간은 그를 성장시켰다. 이제 무대에 서더라도 웬만해선 떨지도 않는다.

배우로 시작한 단원 생활이지만, 도중에 맛본 일이 배우 업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직접 작품 연출도 한다. 최근에는 20세기 브로드웨이를 이끈 미국 대표 극작가인 닐 사이먼(1927~2018) 작가 희곡 <플라자 스위트>를 연출해 공연을 올렸다. 이와 함께 스태프 역할도 한다. 극단에서 음향 장비 담당을 하고 있다. 공연 소품 준비부터 무대 작업까지 하나하나 손길 주지 않는 곳이 없다.

▲ 송광일 배우
▲ 송광일 배우

"극단 배우는 연기만 하지 않아요. 무대 작업 모든 것을 함께하죠. 연극이라는 건 종합적인 거잖아요. 하나의 세계를 다 같이 만들고 색을 입히는 게 연극이에요. 공연에 쓰이는 소품을 자신이 만든 것을 써서 연기한 것과 남이 만든 소품으로 연기하는 것은 다른 일이거든요. 내가 만든 공간에서 연기한다는 건 따뜻한 느낌을 주죠. 사실 무대 작업은 다른 사람(무대 팀)이 해주면 편하고 좋긴 한데(웃음),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할 수 있을 때 연기는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애착이 생기는 거니까."

수년째 현장에서 배우로, 연출가로 활동 중인 송 배우는 타향살이가 적적할 법도 한데 진주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장이 사람을 우선시하는 극단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자, 발전시켜주는 곳이라고 현장을 표현했다.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같은 자리에서 연기하고 작품을 연출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자신을 발전시켜준 소속 극단이 좋아서다. 지난 10년간 서울에서 활동했다면 이만큼 작업하고 발전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가 크다. 올해도 그는 진주에 남아 연극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계획이다.

"진주로 오게 된 이유는 작업하는 지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진주는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여기로 오는 걸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여기 온 다음에도 서울로 가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처음에 경남에 왔을 때는 '너는 왜 서울로 가지 않고 거꾸로 왔냐'고 하는 분이 많았는데, 저는 거꾸로 온 게 아니고 더 좋은 작업 환경을 찾아온 거예요. 계속 작업을 이어가면서 연기 잘하는 사람, 연출 잘하는 사람 이런 게 아니라 꾸준히 작업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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