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총성만 가득한 미래사회
기적처럼 임신한 소녀 지키려
염세적이던 주인공, 고군분투
존 태버너 작 '기도의 파편들'

세기말적 감성과 우울한 정서로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싶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하여 베토벤 교향곡의 웅장함으로 지난해의 해묵음을 씻어내곤 요한 슈트라우스의 흥겨운 왈츠 리듬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 클래식계의 오래된 전통이다. 하지만 이제 돌아보려는 영화는 불안과 혼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스크린에서 보이는 색감마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래비티>(2013)로 경이로우나 너그럽지 못한 우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스크린에 구현하여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린북>(작품상), <더 페이버릿> <보헤미안 랩소디> 등의 쟁쟁한 작품들과 경쟁하며 쿠아론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로마>(2018)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감독으로서의 대표작이라 할 이러한 두 작품과 함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 지닌 공통점이라면 각본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는 뛰어난 연출가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인류의 위기 = 2027년 영국의 어느 카페, TV에서는 어느 청년의 죽음과 관련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그곳의 모든 이는 마치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는 듯 몰입하고 있다. 죽음을 맞은 청년의 이름은 디아고, 그리고 그가 살다 간 시간은 18년 4개월에 분을 넘어 초 단위로 언급된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어린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 시간만큼 인류에게는 불임의 시대가 찾아왔었고 이제는 희망도 없이, 조용하지만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장면. /갈무리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장면. /갈무리

혼돈에 빠져버린 세계, 하지만 영국은 군대를 앞세워 그나마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끊임없이 밀려드는 불법 이민자들을 색출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정부와 각종 저항단체들과의 전쟁과 곳곳에서의 테러.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 테오는 이민자의 권익을 지키려는 저항단체 피쉬단에 납치, 자신의 옛 연인이자 그곳의 리더인 줄리언을 만나 인류의 미래를 짊어질 중대하고도 엄밀한 부탁을 받게 된다. 불법체류자인 흑인 소녀 '키'를 위한 통행증을 만들어 달라는 것. 어찌 보면 그냥 평범한 한 소녀를 해변까지 안전하게 데려가 '휴먼 프로젝트'의 배에 태우려는 것이다. 왜 그녀가 그토록 소중하며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려는 것일까? '키'는 자신의 이름처럼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열쇠로 자신의 뱃속에 새 생명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 테오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은 듯 감격스럽다. 그렇게 그녀와의 동행을 시작한 테오, 자신의 아이를 잃어 염세적이던 그는 이제 인류를 위한 마지막 희망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 한다. 하지만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통증이 시작되어 아기가 세상을 향해 첫 울음을 터트리기까지, 그 아기가 불순한 이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그리고 포화와 총격 속에 '인류 프로젝트'를 만나 그녀와 아기를 무사히 배에 태우기까지.

◇기도의 파편들 = '키'가 자신이 걸친 옷을 하나씩 풀자 당황하는 테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은 형언하기 힘든 경외로 가득하다. 건강한 여인의 몸에 품어진, 아직은 그 모습을 알 수 없는 작은 생명. 이처럼 작은 잉태가 이토록 기적 같은 일이었던가.

그리고 이때 장면만큼이나 신비로운 선율이 공간을 메운다. 바로 영국의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기도 한 '존 태버너(John Tavener·1944~2013)'의 'Fragments of a Prayer(기도의 파편들)'다. 작곡가의 이름이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혹자에게는 헛갈릴 수도 있으니 동명의 두 작곡가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는 바로크보다도 이전인 16세 초, 영국의 다성음악 절정기에 활동했던 작곡가 '존 태버너' (John Tavener·1490~1545)로 평생을 교회 관련 음악을 작곡하며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곡가이다.

그리고 무려 450년이 넘어 그의 직계 후손이자 이름마저 같은 작곡가가 태어난 것이다. 2003년 영국 엘리지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기도 한 현대 작곡가 태버너, 그의 음악적 특징이라면 메시지다. 과도한 물질문명과 20세기를 지배하던 사상과 이념, 그리고 이에 동반된 폭력을 향한 환멸과 비판이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이다. 이는 '영적 미니멀리즘'으로 불리며 1970년대 등장한 음악적 사조, 아니 철학으로 에스토니아의 '아르보 페르트', 폴란드의 '헨릭 구레츠키' 역시 궤를 같이한다. 그들은 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를 위로하고 이념을 바탕으로 한 폭력에 저항, 혼란과 불안의 세상을 음악을 통해 치유하려 노력하였고 그 음악적 원천을 중세, 그리고 종교음악이 주류였던 르네상스에서 찾았다. 하여 그들의 음악은 르네상스를 지배하던 종교적 분위기를 재현할 뿐 아니라 제례적, 그레고리안적 감성이 가득하다. 이는 음악을 통한 참선, 그리고 가사에 내포된 구원 혹은 현실에 대한 경고로 현실사회를 비판하고 위로한다.

작곡가 태버너의 또 다른 위대한 점이라면 신비주의 사상은 물론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를 연구, 이를 바탕으로 작곡에 임했다는 것으로 그가 창조한 선율에서 동양 음악의 향취마저 느껴지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영화에 흐르던 'Fragments of a Prayer' 역시 이러한 그의 작풍이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소프라노 '사라 코놀리(Sarah Connolly)'의 음성은 숭고하며 온 세상에 스며들려는 듯 번져 오는 위로의 선율은 비록 가사를 알지 못하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구원인 것이다. 그렇게 이 곡은 영화의 곳곳에 배치되어 감동을 더한다. 하지만 다른 그 어떠한 장면보다 '키'가 테오를 향해 자신이 아이를 가졌음을 알려주는 경이로운 순간, 태버너의 음악은 더욱 신비로우며 예수가 탄생했던 헛간이라는 장면적 설정과 함께 메시아(구원자)로서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희망 = 영화에 등장한 태버너의 또 다른 작품 'Eternity's Sunrise', 'Song of the Angel' 역시 그의 작풍이 드러난 명곡으로 장면 곳곳에 스며들어 세기말적 경고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장면. /갈무리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장면. /갈무리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를 논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 것이 후반부 12분간의 롱테이크 장면이다. '키'를 잃어버린 테오가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포탄과 총격을 뚫고 찾아 나서는 장면. 그리고 여기서 흐르던 불편한 사운드가 있으니 바로 폴란드의 현대 작곡가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1933~2020)'의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다. <엑소시스트(1973)>, <샤이닝(1980)> 등 곡이 사용되었던 영화만으로도 그 분위기가 충분히 짐작되는 바다.

영화를 기억하는 데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 제목이 너무도 강렬했다거나 배우의 연기를 잊을 수 없다거나, 혹은 연출이 뛰어나다거나 전하려는 이야기가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다 등 그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되며 이로 인해 계속하여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 그렇다. 영화의 막바지, 반군과 정부군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가까스로 '키'를 찾은 테오는 조심스레 아이를 안은 채 포화 속을 헤쳐나오려 한다. 언제 어디서 총탄이 날아와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르는 지옥 같은 상황. 이때 그 자그마한 아이의 울음소리는 모든 것을 멈춘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난민들은 아이에게 손을 뻗어 자그마한 축복이라도 전하려 하고 늑대처럼 달려들던 정부군의 병사도 다급히 외친다. 평화다. 그리고 그 순간은 비록 짧았지만 희망이다.

"사격중지! 사격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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