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으려니 안 보이던 새들, 동네 하늘에
민생·상식·행복도 항상 가까이에 있어

엄마랑 대화하다 보면 아들은 언제나 백전백패다. 힘들이지 않고 늘 한방에 슬쩍 넘어트린다. 예순이 다 돼가는 아들놈은 맨날 제자리걸음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삶의 지혜는 책이나 글에서보다 경험에서 더 많이 우러나온다는 사실 또 한 번 실감했다. 긴긴 겨울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지면 뉴스를 살짝 엿본다. 아니나 다를까 온통 선거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다. 반복해서 듣다 보면 솔직히 '왕짜증'이다. 단독, 충격 폭로, 공정과 상식, 허위, 가짜, 대전환, 적폐 일소, 민생, 죄송, 사고, 사퇴란 말이 줄을 잇는다. 무한 경쟁 달리기 경주 같다. 계속 보고 있으면 혈압 올라 위험할 수도 있어 주섬주섬 카메라와 망원경 챙겨 길을 나섰다. 심심해하던 엄마도 함께 차에 오르신다. 그런데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이다. 하긴 할 일 없이 차에다 기름 때면서 다니는 아들 모습이 좋아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도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하는 탐조 기행이라 나름 즐겁다. 진양호와 남강댐, 사천만으로 새 찾아 이리저리 다녀보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새가 잘 보이지 않는다. 원래 세상 이치란 게 그렇다고 엄마가 슬쩍 훈수를 놓으신다. 보고 싶을 땐 안 보이고, 안 보고 싶을 땐 보인다는 말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인가 보다.

"지름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 사는데 고마 집에 가자!" 지당한 말씀이라 곧바로 운전대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엄마 집 하늘 위에 천연기념물 독수리들이 날아다닌다. 황토방에 군불 때야 하는데 팽개쳐 놓고 집 뒷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독수리를 타면서 나는 까마귀도 보인다. 따다닥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눈 돌리니 큰오색딱따구리가 밤나무 가지에 앉아 열심히 먹이 찾고 있다. 조금 있으니 천연기념물 비행 쇼가 펼쳐진다. 거짓말같이 흰꼬리수리, 참매, 새매가 줄줄이 지나간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 흰꼬리수리는 주로 물고기를 사냥하는 새다. 참매는 오리나 기러기도 사냥할 만큼 용맹스러운 새다. 새매는 대한민국 소방청 상징 새라고 하는데 작은 새가 주요 사냥 대상이다. 모두 멸종위기종이다.

풀섶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정말로 온갖 새가 다 찾아온다. 조그만 웅덩이에 와서 목욕을 즐기기도 하고, 덤불 속을 옮겨 다니며 풀씨도 찾아 먹는다. 숲속 요정 같은 노랑턱멧새, 소리 흉내 내기의 '달조' 어치, 시끄럽게 울어대며 농민들 열 받게 만드는 직박구리, 물까치. 언제 봐도 귀여운 뱁새도 보인다. 산 그림자 드리워진 집 뒤란에 굴뚝새도 나타났다. 옛날엔 제법 많이 보였던 것 같은데 최근엔 보기가 어려워진 새다. 박새랑 딱새도 나뭇가지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며 저녁거리를 찾는다. 까치들은 어둑어둑 해 질 무렵 수십 마리가 한데 모여 '잠무리'를 이룬다.

새 보며 사진 찍다 집으로 내려오는데 엄마가 툭 한 말씀 하신다. '거가 새 본부다.' 뒤통수를 맞진 않았지만, 머리가 띵해졌다. 짧은 순간 꿈 찾아, 사랑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녔던 젊은 날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편으론 아직도 돈 찾아, 권력, 명예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파리떼 '정치꾼'들도 떠오른다. 민생도 상식도 행복도 항상 가까운 곳에 있으니 부디 멀리서 찾지 마시라. 가까이에 있으면 따끈따끈 황토방에 앉아 도란도란 새 이야기 나누며 충고라도 해 주고 싶다. 형님들! 아무튼, 새해에는 정치도 국민 사랑도 좀 잘들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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