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몰두 '인체조각' 정평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제작
자유로운 작업 형식·방법 추구
'인간 존엄' 표현한 예술세계
"물질 경도된 문명 향한 경고"

창원 출신 조각가 김영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많겠지만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상은 그의 이름 앞에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붙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남 여러 곳에서 김영원 작가의 작품을 본 이라면 또 세종대왕 작가와 동일 인물로 연결짓기 쉽지 않을 듯도 하다. 그의 작품은 창원 용지호수공원뿐만 아니라 장복산조각공원·통영 남망산조각공원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창원조각거장전'에 맞춰 발행한 안내 책자에 소개된 윤진섭 미술평론가 설명을 보면 더욱 그가 어떤 작가인지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점토로 이루어진, 사람 키보다 다소 높은 기둥 앞에 흰색의 한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선다. 조용히 서 있던 그는 이윽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것은 예사 춤이 아닌 기공의 춤이다. 춤사위가 여느 춤과는 사뭇 다르다. 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고조되자 남자는 순간 양손을 뻗어 흙기둥을 후벼 파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격렬한 기공 춤의 퍼포먼스는 그렇게 흔적만을 남긴 채 끝이 났다."

▲ 김영원 작가가 '중력 무중력' 앞에서 관람객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 김영원 작가가 '중력 무중력' 앞에서 관람객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창원조각거장전 개막식에 김영원 조각가가 참석했다. 그의 작품은 3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았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던 해설사의 마이크를 건네받아 직접 자기 작품을 설명했다. 그가 '코스믹 포스(Cosmic Force·우주적인 힘)'라는 추상화 앞에서 설명할 때 슬쩍 기공의 자세가 취해지는 것을 보고 윤 평론가의 글이 이해됐다.

"우리에게 실증주의적인 합리주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일제 36년 동안 지배당했다고 봐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합리주의적인 예술이에요.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의 역사를 바로 보는 것이죠.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사형수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학교에서 난리난 거예요. 교수들이 가만있지 않죠. 야, 너 이거 어쩌려고 이러냐."

그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 이후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떻게 작품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재미가 없다며 1980년도 초에 작업한 '중력 무중력'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것도 똑같은데 조금 더 은유적으로 권력자가 권력을 쥐고자 해서 쥐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진 욕망이라는 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그 시대를 피해가려고 하고 나름대로 괴로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 김영원 작 '중력 무중력88-2'./창원문화재단
▲ 김영원 작 '중력 무중력88-2'./창원문화재단

1988년에 만든 '중력 무중력88-2'를 가리키며 또 설명을 이어갔다. "육체라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이 아닌데, 우리 현실에서는 분리하죠. 흑과 백을 가르고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작품들이 벌거벗은 인체 형상이다 보니 어느 정도 민망했던 처음의 감정이 그의 설명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고 그 대신 작품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 보이는 듯했다.

◇작가의 생애 = 김영원은 1947년 창원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1975)과 동 대학원(1977)을 졸업했으며,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1994년 제22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참여 작가로 선정됐을 당시 "동양의 정신과 현대미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비엔날레 최고의 작가"라고 극찬을 받았다.

김영원은 추상미술이 화단의 주류를 차지했던 1960~70년대에 독자적인 사실주의 조각을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해, 한국 현대조각에서는 드물게 근 40여 년 동안 인체조각이라는 일관된 방법으로 '인간실존'을 주제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발전시켜온 한국 구상조각의 거장이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구상조각 거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 김영원의 추상화 작품인 'Cosmic force D19-30'. /창원문화재단
▲ 김영원의 추상화 작품인 'Cosmic force D19-30'. /창원문화재단

◇예술세계 = 김영원은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작업은 때로는 행위로, 설치로, 입체로, 평면으로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며, 그 양식 또한 구상이나 추상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운 세계를 열어가게 될 것이다." 그는 작업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방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을 지녔다. '인간실존'이라는 근본적인 철학을 표현함에 그것이 사실주의에 따른 표현이든 은유적 묘사든, 또는 기를 쏟아 드러낸 추상화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코스믹 포스'라는 작품에 대한 윤 평론가의 설명이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고 평정을 이룬 상태에서 순간적인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김영원의 신체에서 파생된 기의 세기가 작가의 몸을 빌려 물감에 미친 결과인 셈이다. (…) 이럴 때 마음의 상태는 나의 신체와 의식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잊는 특수한 마음의 작용이 나타난다. 전율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심적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창원 용지호수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김영원 작 '그림자의 그림자(홀로서다2)'. 2016창원조각비엔날레가 끝나고 영구 설치됐다. /경남도민일보 DB
▲ 창원 용지호수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김영원 작 '그림자의 그림자(홀로서다2)'. 2016창원조각비엔날레가 끝나고 영구 설치됐다. /경남도민일보 DB

김영원이 1970~80년대에 걸쳐 제작한 '중력 무중력' 시리즈는 사실적인 인체 표현에 근간을 둔 작품들이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만든 '중력 무중력-윤회' 연작은 확연히 드러나는 불교적인 색채로 그의 관심사가 인체의 형식적 외면에서 종교적 법열에 가까운 내면세계의 표출로 선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술계에서는 김영원의 이 시기를 사회적 주제에서 종교적 주제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보고 있다. 비록 1990년대 초반에 잠깐 종전의 주제로 환원되는 기미가 보였기는 하지만 1993년 무렵 시작한 원기둥 작품 이후로는 현재의 김영원으로 정착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윤 평론가는 그러한 김영원의 예술세계를 해탈과 재생을 둘러싼 인간성의 존엄이라고 봤다. "인간성의 존엄에 대한 발견은 곧 문명에 대한 혐오이다. 그의 예술적·종교적 의식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 존엄에의 각성을 위한 매개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현대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물질에의 경도(傾倒)를 경고함으로써 예술행위를 통해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정신이 주인 되는 세계이다. 그는 한 사람의 사제이자 예술가로서 그러한 세계로 향하는 대문의 빗장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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