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인 얼 거슬러 오르면 만나는 가야어
현재 사용하는 우리말 곳곳에 남아 있어

'공, 단디 바라! 투수 어리다꼬 얕보모 큰일 난다!'

경남의 NC다이노스 야구단 경기는 우리 지역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은다. 현장에서는 '단디'와 '쎄리'의 응원과 함께 선수들과 하나가 된다. 알게 모르게 지역어는 우리가 가장 편하게 쓰는 말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면접을 봐야 되는 경우에는 사투리를 써도 되는지 망설이게 된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면 자연스럽게 해당 지역어를 쓰게 되지만 그게 '선물'이 될지 '장애물'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지역민들은 해당 지역의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면서 성장한다. 경남 출신은 경남 사투리를 써 가면서 시나브로 경남인이 되어 간다. 가끔 경남인의 성취에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삼성과 엘지의 창업주가 경남 사람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겐 큰 자랑거리이지 않은가? 숨기고 살 게 아니면 당당한 '경남인'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경남의 언어와 역사에 자긍심 가지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길은 지역의 정치, 교육, 행정의 영원한 지향점이다.

경남인의 자긍심은 우리 지역 언어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고향의 언어와 역사가 부끄러우면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경남도청은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게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가야는 왠지 멀리 있는 듯하다. 녹슨 철제품과 무채색의 토기만으로는 성이 안 찬다. 가야 역사도 잘 와닿지 않는데 '가야의 언어'라고 하면 그런 게 있을 수 있는지 놀라워할 수밖에.

호남과 충청이 '백제', 경북과 강원이 '신라' 문화권이라면 경남은 '가야' 문화권의 중심이다. 경남인의 얼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가야'와 '가야어'에 와닿게 되는 셈이다. '미리미동국, 한다사, 고자국, 다라국' 등은 가야인이 가야어로 지은 나라 이름이다.

이 이름 속의 '미(물), 한(크다), 곶(뾰족한 곳), 다라(높은 곳)' 등은 오늘날의 '미더덕, 한강, 송곳, 다락'으로 이어진다. '아, 이곳은 이래서 이런 이름을 붙였구나' 하면서 우리는 가야인과 소통하게 된다.

경주 사람 김부식이 1145년에 편찬한 <삼국사기>에 놀랍게도 '가라어(加羅語)'가 등장한다.

전단량( 檀梁)(전단량은 성문 이름이다. 가라(加羅) 말로 문(門)을 량(梁)이라 했다고 한다./ 檀梁( 檀梁 城門名 加羅語 謂門爲梁云)).

'량(梁)'은 현재 가야어 '돌' 혹은 '도'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김부식이 '가라어'라고 했던 이 '량'은 '노량(鷺梁, 남해·하동), 견내량(見乃梁, 거제·통영), 칠천량(漆川梁, 거제), 착량(鑿梁, 통영), 구라량(仇羅梁, 사천), 사량(蛇梁, 고성), 명량(鳴梁, 진도), 착량(窄梁, 강화도)' 등의 '량'과 같다. 모두 좁은 물길이 있는 지역이다.

'명량(鳴梁)'과 '착량(窄梁'은 각각 '울돌, 손돌'이라고도 한다는 점과 일본어 '도(と, 戶·門)'가 '대문, 좁은 해협' 등의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가라어'인 '돌·도(梁)'의 뜻도 가늠할 수 있다. 좁은 개울을 '도랑'이라 하듯이 가야어의 '돌·도'는 현재 우리말과 얼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고성의 소가야중학교, 하동의 한다사중학교에서 가야는 되살아났다.

쎄리라, 쎄리라! 우와!! 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