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이웃과 정을 나누는 손길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 시기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길게는 10~20년 동안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온 이들도 많다.

창원에 있는 '꽃들에게 희망을'은 아이가 있는 저소득 가정에 매주 반찬을, 기초수급대상자·차상위계층이 아닌 홀몸 노인에게 매달 쌀과 라면, 단백질 식품을 기부한다. 이 단체 봉사자들은 현물 기부부터 직접 김장을 하고, 반찬 배달로 봉사와 기부를 실천한다.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장기 봉사활동가들이 있다. 이들의 봉사활동 기간은 평균 14년. 공동체를 더욱 튼튼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온 이들이다.

대학생 때 봉사를 시작해 이젠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이영길(39) 씨, 중학생 때 시작해 성인이 된 박한얼(26) 씨, 부모님 따라왔다가 봉사를 삶 일부로 삼은 하수지(26) 씨에게서 봉사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를 들어봤다.

▲ 지난해 12월 4일 '꽃들에게 희망을'이 이웃과 나누고자 김장을 하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
▲ 지난해 12월 4일 '꽃들에게 희망을'이 이웃과 나누고자 김장을 하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

◇ 시작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간다 = 이영길 씨의 봉사 여정은 대학생 때 시작했다. 김해서 살다가 창원으로 온 이 씨는 '꽃들에게 희망을'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이 씨는 20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다. 행사를 기획하고, 봉사활동 현장을 관리하는 등 굵직한 일을 도맡았다. 해왔던 일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 씨는 웃으며 "그냥 필요한 일, 하라는 일은 다 했다"고 말했다.

하수지 씨는 봉사활동 계기랄 게 따로 없다. '꽃들에게 희망을' 후원자였던 아버지를 따라오면서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봉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봉사하는 삶을 멈추지 않았다. 대학 입학 때는 '꽃들에게 희망을' 구성원에게 입학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하 씨는 "평소 '꽃들에게 희망을'이 십시일반으로 이웃을 돕는 것처럼 아마 입학 지원금도 그렇게 모아주셨던 것 같다. 봉사는 여러 사람이 모여 큰 마음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봉사를 시작하고 삶에 어떤 변화를 겪었느냐는 질문에는 서로 다른 대답이 나왔다. 이 씨는 인생의 절반을 봉사로 보내면서 성격부터 가치관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니 소극적이던 성격이 활발하게, 다양한 생각을 접하면서 지금의 가치관이 생겼다. 하 씨는 변화랄 게 없었다. 어릴 때 시작해서 그런지 이제는 봉사가 삶에 스며들었다고 말했다.

 

39세 이영길 씨 "성격부터 가치관까지 변화, 작은 기부부터 실천하기를"
26세 박한얼 씨 "보람·만족감에 계속 활동... 마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
26세 하수지 씨 "삶에 스며든 나눔, 대학 때 야학 봉사 기억 남아"

 

◇봉사는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 = 하수지 씨는 학창시절부터 봉사활동 시간을 항상 초과하는 열혈 봉사학생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 동아리에서 3년간 했던 야간학교 봉사활동이다. 구미 야간학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주민들에게 과학, 영어를 가르쳤다.

야학에는 배움에 열정이 있는 분들이 왔다. 하 씨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 퇴근하고 부랴부랴 오는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하 씨는 학생들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하 씨는 "봉사했던 기억 중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이 야간학교 학생들의 웃음이다"라고 말했다.

하 씨가 봉사활동을 그만둬야 하는 일이 있었다. 야학 운영은 지자체 지원금으로 임대료, 교재비 등을 충당했다. 하지만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야간학교 지원을 초등 검정고시로 한정했다. 중등, 고등 검정고시를 도와주던 동아리는 부원들 사비로 봉사를 이어가다 결국 중단했다.

하지만 이 일이 하 씨의 봉사 본능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요즘에는 주말에 일부러 창원으로 와 쌀을 퍼담고, 김장 나눔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만족감' 때문이다.

하 씨는 "봉사활동에서 얻은 만족감, 보람으로 다음에 움직일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박한얼 씨는 이런 보람, 만족감이 봉사를 이어가게 하는 힘이라고 덧붙였다.

하 씨는 봉사활동 덕분인지 인간관계에서 힘을 얻는 법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마음이 타인보다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길 씨는 협동, 공감, 나눔을 강조했다. 20대 때 봉사를 시작하면서 사회는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협동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꽃들에게 희망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이 씨는 옆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박 씨도 공감했다. 봉사하지 않는 삶을 상상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보다 남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이 씨는 "봉사는 타인과 공감하는 것이다. 봉사자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며 공감대와 연대를 형성한다"라며 동료 간 애정을 표했다. 그는 이어서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고, 욕심을 버리니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함께 봉사를 하려고 한다. 아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크고 작은 성취감을 느껴보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깨닫길 바라서다.

▲ 김장 봉사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서 셋째 뒤가 박한얼 씨, 여섯째가 하수지 씨. /꽃들에게 희망을
▲ 김장 봉사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서 셋째 뒤가 박한얼 씨, 여섯째가 하수지 씨. /꽃들에게 희망을

◇대단한 신념? 그런 건 없다 = 봉사에 대단한 신념이 새겨지면 하고자 하는 몸과 마음만 무거워진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해온 박한얼 씨는 "바빠서 봉사를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봉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유 불문하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 씨는 봉사를 단순하게 생각한다. 과한 의미와 생각을 부여하면 불평이 생기고 대가를 바라게 된다. 여러 사람이 그래 왔다. 또 경계해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 동정심, 봉사자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리면 봉사할 때 말과 행동으로 다 드러난다. 나도, 남도 상처 입히는 행동이 된다.

이 씨도 남을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봉사를 잘할 수도, 오래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그들과 같은 마음을 나누고 가지며 봉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이 씨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 20대 때 이영길(뒷줄 왼쪽 첫째) 씨는 학생들을 데리고 국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
▲ 20대 때 이영길(뒷줄 왼쪽 첫째) 씨는 학생들을 데리고 국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

◇소외된 이웃에게 문을 두드리자 = 겨울이 되면 추운 날씨를 이겨내야 하는 이웃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 이웃과 연결과 인연은 춥든, 덥든 언제나 필요하다. 하수지 씨와 박한얼 씨는 문을 두드리는 봉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홀로 사는 노인이 홀로 사망하는 사고가 늘어나는데 우리가 먼저 문을 두드리며 안부 인사를 건네자고 했다. 하 씨는 "몇 년 전에 어머니가 동네 통장을 할 때 안부인사를 따라나선 적이 있다. 간단한 물품을 전하고, 인사만 나누는데도 이웃들이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남는다. 한 번씩 안부를 묻는 작은 행동이 큰 사고, 슬픈 사고들을 막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영길 씨는 "꼭 겨울에 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작은 기부부터 실천해볼 것을 추천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잔돈을 기부함에 넣어보고, 헌혈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으로 이어지리라고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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