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자(79) 씨는 16년간 떨어져 지내다 4년 전 외손자가 아파서 한국에 왔을 때 딸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오랜 시간을 그리워하며 견뎌온 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

딸 백레나(61) 씨는 지난해 1월 사할린동포지원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사할린 영주귀국 대상이 직계비속까지 확대되자, 지난해 12월 4일 입국해 양산에서 어머니와 이웃으로 살게 됐다.

어머니 김숙자 씨는 16년 전 양산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이번에 사할린동포와 동반 가족이 영주귀국 할 수 있게 되면서 같이 서류를 내서 딸 부부와 함께 영주귀국자로 선정됐다.

▲ 사할린에서 영주 귀국한 김숙자(오른쪽) 씨와 딸 백레나 씨. 현재 양산시 상북면에 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사할린에서 영주 귀국한 김숙자(오른쪽) 씨와 딸 백레나 씨. 현재 양산시 상북면에 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김 씨는 "충청도가 고향인 아버지는 1940년에 사할린으로 징용을 끌려가셨어요. 그때 어머니도 배를 구해 타고 사할린으로 찾아가셔서 함께 사셨어요. 저는 사할린에서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어요"라고 말했다.

일제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을 사할린으로 끌고 가서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시켰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일본 탄광에서 이중 징용을 당하기도 했다. 해방 후 한국, 일본 모두 이들 송환에 적극적이지 않아 이들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사할린에 억류돼 어려운 삶을 살았다. 1989년에야 영주귀국 사업으로 사할린 동포들 일부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김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일본인에게 맞아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모습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39세에 4남매를 두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러시아말이 서툰 데다 춥고 낯선 곳에서 살아내기가 힘겨웠다고 했다. 힘든 가정 형편 탓에 장녀였던 김 씨는 일찍 결혼을 해서 레나 씨를 낳았다.

 

일제강점기에 부친 끌려가 사할린서 태어난 김숙자 씨
춥고 낯선 곳서 힘겨운 생활, 10여 년 전 양산에 터 잡아

 

김 씨는 "(레나 씨를 쳐다보며) 첫째 딸인 이 아이를 예뻐할 사이도 없었어요. 러시아에서 가구 공장 검열원으로 27년 일했어요. 퇴직할 때 오랫동안 일 잘했다고 메달까지 받았어요"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러시아, 한국 물품을 파는 무역회사를 차렸는데 러시아에 물품을 먼저 보내고 돈을 못 받는 사기를 당해서 돈을 다 날렸어요"라며 귀국 생활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그의 둘째 딸은 영주 귀국하는 형태가 아니라 20년 전에 외국인 신분으로 입국해 귀화해서 살고 있다. 김 씨의 어머니와 남편은 오래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에 남은 큰딸이 그리웠던 김 씨는 큰딸 내외가 영주귀국 신청하는 것을 도왔다.

"하늘에 빌고 또 빌었어요. 제발 이번에 우리 딸 오게 해달라고요. 매일 울다시피 살았어요. 이제 아침마다 제가 너무 행복해요. 우리 집 근처에 딸과 사위가 함께 살게 됐으니까요."

▲ 인터뷰 중인 김숙자 씨와 딸 백레나 씨.
▲ 인터뷰 중인 김숙자 씨와 딸 백레나 씨.

레나 씨도 기쁘다고 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그는 어머니에게 러시아말로 소감을 전했다. 레나 씨는 "한국에 오니까 마음이 좋아요. 심근경색 등으로 편찮으신 어머니를 보호할 수 있어서 저도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에 남은 가족 얘기를 묻자 레나 씨는 눈물을 흘렸다.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오면서 외동딸과 이산가족이 됐다. 레나 씨의 딸은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며 러시아에 살고 있다.

레나 씨는 "딸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요. 5살, 17살 손자도 보고 싶고요. 언젠가는 딸도 한국에 올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도 이렇게 한국에 오는 데 십 년 넘게 걸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생이별 아픔 큰딸 백레나 씨, 지난달 입국해 함께 살게 돼
"너무 보고싶어 매일 울다시피 뭐든 함께 할 생각에 설레기만"

 

어렵게 함께 살 수 있게 된 모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김 씨는 "딸이랑 아직 아무 데도 못 가봤어요. 12월 초에 입국해서 자가격리 10일 하고 양산 임대아파트에 와서 생활용품, 가구 등 이제 집 정리 거의 다 돼 가요. 아직 등록증 같은 게 하나도 안 나왔어요. 그래서 병원에도 못 가고, 휴대전화도 아직 못 만들었어요. 이제 그런 게 다 정리되면 같이 여행도 가려고요"라며 웃었다.

레나 씨도 "그동안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제 어머니를 곁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한국말도 배우고요"라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1981년 딸이 사위랑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 유일하게 모녀가 함께 나온 사진이다. 러시아에 있을 때는 생활에 바빴고, 김 씨가 한국에 와서는 떨어져 지냈기에 함께한 사진이 없었다.

김 씨는 "이제 딸이랑 가족사진도 원 없이 찍고요. 뭐든 함께 할 생각에 너무 설렙니다. 꿈만 같아요. 매일 좋은 일만 있도록 기원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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