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 빠진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일 뿐
정리·반추·평가·계획하는 시간 갖기를

이틀 뒤면 해가 바뀐다. 우리 나이 셈법으로는 한 살 더 먹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데 60년쯤 살고 보니 절감한다. 누군가 이 현상을 '기억의 밀도'로 해석했다. 기억이 조밀한 시간은 느리고 성근 시간은 빠르다!

지금이야 학원에 쫓기는 고달픈 생활이지만 기성세대들의 소년 시절만 해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나의 여행이었다. 재미있는 일투성이였으며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장터처럼 이벤트가 펼쳐진 곳을 만나면 발걸음은 마냥 느렸다. 그러니 콩나물시루처럼 기억으로 가득한 그 시간은 더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경험한 것이 많으니 별로 특별한 것도 없고 세파에 시달려 감정마저 무디니 좋든 궂든 별다른 감흥도 없는 일상의 반복이라 가을걷이를 마친 들판처럼 기억이 귀한 시간은 그저 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어제와 다른 오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 맺은 인연, 새로 태어난 피붙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와의 영원한 이별 같은 근원적인 변화부터 활동 공간 이동이나 첫사랑과의 조우 등 예상하지 못한 사건까지. 느낌의 강도 차이는 있겠지만 삶에는 늘 크고 작은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일들을 추려 '나의 10대 뉴스'를 정리해 보면 어떨까? 언론들은 코로나를 맨 앞자리에 놓을지 모르지만 세 번이나 백신을 맞았지만 별다른 부작용마저 없었던 나의 10대 뉴스에는 발붙일 곳이 없는 그런 나만의 것 말이다.

일기를 쓴다면 쉬울 것이고 일정을 메모하는 달력이라도 있으면 조금 수월하겠지만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막막할 수 있다. 궁여지책!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나 사진, 신용카드 사용 명세라도 살펴보면 보탬이 된다. 어떻게든 10개 정도 고르면 지난 일 년을 정리, 반추, 평가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를 확보하게 된다. 허망할 정도로 초라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것들을 펼쳐 놓고 좋은 일과 나쁜 일로 구분해 보라. 좋은 일이 대부분이거나 맨 앞자리를 꿰찬 좋은 일이 다른 모든 일을 상쇄하고도 남으면 지난 일 년은 대체로 좋았다고 평가해도 그리 틀리지 않으리라. 나쁜 일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일들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무관한 우연이라면 단순한 행운이거나 사건일 뿐이니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아니라면 그 일들의 전후를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일을 지속하거나 확대할 방법 또는 나쁜 일을 방지하거나 그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 정리와 평가를 마치면 이제 다가오는 일 년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세울 차례다. 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같은 일과성도 좋고 일주일에 몇 번 이상은 1만 보를 걷는다거나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겠다 같은 지속적 목표도 좋다. 결과를 정기적으로 기록하면 내년 이맘때 자신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돌아보는 좋은 자료가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표현에 끌리는 때가 온다. 보통 나이에 주눅 들지 말고 활기차게 활동하라는 (자기) 격려 의미로 쓰지만, 나이의 진정한 가치를 간과할 우려가 있다. 60세는 30세의 두 배를 살았거나 30년을 더 살았다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걸맞은 관록을 갖추어야 한다. 관록이 빠진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수록 빨라지는 시간이지만 일 년에 한 번쯤은 붙들어 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나만의 10대 뉴스'를 골라 정리, 반추, 평가, 계획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나이를 잘 먹을 수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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